아비부의 자리에 계집녀를 넣으니 : 가녀장의 시대
- 가족이란 무엇인가
제목과 표지가 읽기 전부터 압도적인 이 느낌.
그러나 무릇 책이란 책장을 넘겨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내가 어디로 흐를지, 책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알 수 없는 법이다.
딸이 돈을 벌고, 딸을 사장으로 모시는 모부가 있다. 일반적이진 않지만 없을 것 같지도 않은 설정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가부장' 대신 '가녀장'이 된다. 당신이라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상황이 불편하다면 그 이유는 뭘까? 내가 나이 어린 사람을 '모셔야' 되는 것이 못마땅한가?
그녀는 성실하게 매일매일 자신의 글을 팔아 돈을 번다. 모부를 피고용함에 있어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평가가 있지는 않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고자 한다. 이상적으로 보이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은가.
나의 낮시간을 몸과 마음을 다해 살아낸 결과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면 베리 나이스 아닌가. 게다가 그 나머지 시간에 무엇을 하든 개입하지 않는 것 아닌가.
여기에 갑자기 '가족'이라는 개념이 끼어든다. 엄마로서의 정체성, 가족 구성원을 챙겨내라는 윤리 도덕적 책임감이 고개를 든다. 여기서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장님이었던 자녀의 사생활에 내가 개입할 권리는? 사실 뭐 관연한 자식이 아닌가. 열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다 자란 자식이 뭘 하든, 엄마의 잔소리가 뭐 그리 큰 영향력이 있을까.
'스물 넘어 엄마 말 잘 들은 애 치고 잘된 애를 못 봤다'는 대사를 어디서 들었더라?!
이 책에서 나는 오히려 다른 것에 관심을 두었다. 나는 나의 어떤 기술을 팔 수 있을까? 나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나를 드러내고 '이런 걸 할 줄 안다. 심지어 잘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술, 경험, 능력이 무엇인가. 오래도록 잊었던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능력을 가지고 적당히 팔아먹고 사는 것일 테지만, 시작할 때만큼은 고민해보고 싶으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과 공을 들여 키워내고 싶은 기술에 대한 고민. 당신은 그런 기술이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