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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an 16. 2021

인생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10여 년 전만 해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빠는 운전을 하고요, 엄마와 아이는 열심히 지도책을 봅니다. 고속도로 표지판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최대한 움직여서 확인하고요, 여기로 들어가야 되나 다음에 들어가야 되나 옥신각신합니다. 엉뚱한 인터체인지로 들어가 빠져나오기 급급하고, 들어가야 할 곳은 꼭 지나치자마자 알아차립니다. 어쩌다 헤매지 않고 단번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리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비단 고속도로뿐만 아니죠. 낯선 도시로 들어서면 지도책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지인에게 전화해서 몇 번을 물어보고 메모도 했지만 막상 도로 위에서는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호등에서 신호 대기를 합니다. 그럼 얼른 차 창문을 내리고 옆 차를 보며 꾸벅 인사하고 길을 묻습니다. 그럼 옆 차 운전자는요, 입에 거품을 물고 열심히 가르쳐줍니다. 고개는 끄덕거리지만 반도 못 알아들을 때가 많죠. 그럼 다음 신호등에서 다른 차량 운전자에게 또 묻곤 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집에 놀러 온 지인에게 오는 동안 길을 어땠는지 뭘 보며 왔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보긴 뭘 봐, 내비 따라왔지. 네비 보고 오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라고 하네요.


 친구가 사는 도시로 놀러 갔습니다. 약속 장소로 가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합니다.

"찾아올 수 있겠어? 00 건물 1층인데, 어디라고? 거기면 앞으로 신호등 4개를 지나서 좌회전을 하면 돼. 좌회전해서.. 가만있어 봐. 어, 3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보일 거야. 알겠지?"

 알았다고 영혼 없는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내비 따라가고 있었거든요.


 세상이 나날이 편리해집니다.

 이젠 운전을 하다 길을 헤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요,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습니다. 내비게이션만 따라다니면 되니까요.

 차 창문을 열어 길을 물어볼 일도 없고요,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잡고 가르쳐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이 걸을 때도 다 가르쳐 주니까요.  




 길을 찾아가는 것. 내비게이션이 나오기 전만 해도 헤매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나온 이후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기나긴 인생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으려고 꽤 많은 고민을 합니다. 머리를 굴리고 싸매도 알 수가 없죠. 책을 찾아보고 조언도 구하고요, 기도도 합니다.

 어떤 이는 좁은 길로 가라고 하고요, 다른 이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가라고 합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안전해 보여도 내 길이 아니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면서 말이죠. 그래도 군자대로(君子大路)라 하여 큰길을 가라고도 합니다. 혹자는 안전제일이라며 묻어가라고 하네요.

 누구 하나 마음에 쏙 들게 답해주는 이는 없습니다. 답답함은 늘 떠나지 않고요. ‘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 '지금 할까 아님 기다려볼까’, ’이 일이 나을까, 저 일이 나을까’. 늘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 '짜잔' 하고 나타나 '네 길은 100% 이 길이다'라고 확신을 주면 너무나 좋을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지금, 미래 언젠가는 인생 내비게이션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온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을 해봅니다.

 인공지능이 각자의 유전자를 기반으로 좌뇌와 우뇌를 비교 분석합니다. 거기에 성격, 능력, 잠재의식과 취향까지 고려하고 평가해서 사람마다 학업과 직업을 일일이 정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70억이 넘는 인구가 거대한 빅데이터를 제공해 줄 거니 학습은 얼마든지 가능할 거고요. 지금은 사람들이 시험 성적에 따라 대학을 정하고 적성검사를 하여 진로를 안내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해내지 않을까요?

 음악에 재능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인생 내비가 음악가가 된다고 하니 진짜 악기를 잘 다루고 음악가의 길을 갑니다.

 공부는 관심 밖이었는데 인생 내비가 학자의 피가 흐른다고 하니 숨겨진 재능이 빛을 발하며 훗날 석학이 됩니다.

 영어는 한평생 쓸 일 없을 거라고 하면 이렇게 전전긍긍, 야단 들어가며 단어 외울 필요도 없을 거고요.

 누구에게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인생 진로를 알려준다면 세상살이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편해질 것도 같습니다.


 책을 보며 고민하고 혼자 사색할 이유도 없습니다. 결정은 인생 내비게이션이 척척해줄 거니 그저 따르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그럼 기도할 필요도 없겠네요. 실패도 없을 테니 좌절도 맛보지 않아도 되고, 아픔도 없을 테니 늘 즐거울 것만 같습니다. 

 머리를 싸맬 일이 없어 좋겠다 싶은데 어째 무미건조하고 섬뜩한 생각까지 드는 건 왜일까요?  




 길을 찾아가는 것. 종이 지도책을 몇 번이나 보며 표지판과 비교하고, 옆 차량을 붙들고 물어보고 다음 차량에 또 물어보며 길을 찾아갑니다. 그 여정이 모두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길을 찾다가 지도에 나와있지 않는 곳도 보게 되고요, 안면도 없는 사람과 농담을 하며 격려도 받았습니다. 어렵게 찾아 목적지에 도착하면 오면서 있었던 일, 마음에 드는 장소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어쩌면 길을 찾을 능력이 필요 없게 된 지금. 내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대로만 따라가면 되는 편리함이 차 안의 풍경을 바꿔 놓았습니다. 차 안에서 가는 내내 다들 스마트폰만 봅니다. 차 창문을 열 일도 없고 주위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거리도 없습니다. 여행은 시작부터 건조해집니다. 길을 잘못 찾지나 않을까 고민할 일이 없으니까요.


 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합니다. 실패를 겪고 실패를 이겨내어 성공을 합니다. 실패 사례가 모여 성공담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합니다. 서로 부딪히고 어울리며 희로애락이 쌓이는 거고요. 살아온 날이 쌓일수록 모든 게 추억으로 남으니 회상도 하고 그리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인공지능 내비게이션이 찍어주는 대로 산다면 실패할 염려는 없습니다. 대신 성취감도 느끼지 못할 거고요, 좌절도 없으니 인내할 일도 없습니다. 편리할지는 몰라도 인간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못해 사라지지는 않을까요?


 안 그래도 갈수록 이야깃거리가 없어져가는 삭막한 현실입니다. 판에 박힌 일상인데 인공지능이 알아서 정해주는 인생 내비게이션, 인생도 덩달아 무미건조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보다 인공 지능의 입맛에 따라 살아가는 삶은 나를 위한 건가요? 인공지능을 위한 건가요? 생각할수록 섬뜩해집니다.  




 오늘도 어느 길을 가야 할지,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합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다는데 그럼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인공지능이 아직 여기까지는 알지 못하나 봅니다.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다가 앞으로 어찌 급변할지 모를 세상을 바라보며 다시 같은 고민에 빠집니다.

 '누가 좀 시원하게 가르쳐 주면 안 되나'하고 말이죠. 이래서 영락없이 늘 흔들리는 갈대, 인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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