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의 <시>에 대한 감상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1. 왜 제목이 '미자'가 아니라 '시'일까?
영화의 제목은 소재이자 질문이다. <시>는 미자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시에 대한 영화다. 다시 말해, 미자라는 시인이 아니라, 그가 쓰는 시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중요치 않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시는 무엇인가? 부조리한 인생을 담는 그릇이자, 심지어는 그 부조리를 완결짓겠다는 의지다. 인생이라는 전체집합 속에 시라는 부분집합이 있다. 부분집합의 속성은 전체집합을 벗어날 수 없다. 인생이 살기 어렵다면, 시도 쓰기 어려워야하는 것이다. 동시에 부분집합은 전체집합의 속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시를 어렵게 쓴다는 것은 인생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시는 완결된 형식을 갖춘다. 인생의 부조리를 드러내고는 완결되어버린다. 그리고 남는 것은 시인 뿐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 시인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2. 미자는 왜 자기 손주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을까?
미자는 시인이다. 미자만이 시를 완결할 수 있었던 이유를 먼저 살펴봐야한다. 시인이 시를 완결시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시에 대한 이해는 곧 인생의 부분 집합에 대한 이해다. 미자가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생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말한대로 시는 부조리를 완결짓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를 썼고, 그제서야 손주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시인은 시를 완성시킨 후, 자신의 현실의 부조리를 완결짓겠다는 의지로 나아간 것이다.
3. 영화가 미학적 완결성 갖춘, 수미상관의 구조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왜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영화에 미학적 완결성을 추구했는가?
이 영화의 제목은 <시>다. 동시에 이 영화는 하나의 시다. 그래서 미학적 완결성을 갖춘 수미상관을 넣은 이유는 자명하다. 이 영화 자체가 시이기 때문에 시적 형식을 갖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앞서 말한대로 이 영화는 부조리한 인생을 담는 그릇이자, 그 부조리를 완결짓겠다는 의지다. 영화가 부분집합으로 있는 우리 현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영화의 모습은 곧 우리 현실의 모습이다. 부조리함 속 인간의 의지. 미자라는 시인이 보여준 시를 쓰는 과정은 우리 현실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다. 결국 이는 극중극이 아닌 시중시 라는 독특한 구조를 드러낸다. 그럼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한 명의 시인이 된다. 그는 <시>라는 영화이자, 하나의 시를 완결성 있게 만들었다. 미학적 완결성을 제대로 짓지 않으면, 그는 현실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느꼈던 걸까. 그가 결국에 이 영화를 완결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에 대한 이해 덕분일 것이다. 시를 완성시킨 시인은 이제 현실로 나아갈 차례다. 감독은 영화를 완성시키고 현실의 부조리함을 완결지으려 한다. 차기작이 청년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건 그래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윤동주, <참회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