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너무나 가혹한 범죄
어제 한 프로그램에서 외도를 저지른 남편에게 오은영박사가 말했다. ` 배우자에게 속죄를 하셔야 합니다. 사과가 아니라 속죄입니다.` 특히나 공감이 갔던 부분이다. 사과가 아닌 속죄.
그 일이 있고 1년이 흘렀다. 1년 365일 중 360일을 잠깐씩이라도 그 생각을 했다. 분노와 배신, 불신과 치욕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외도 당사자와 상대방을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응징하지 못한 것.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그 일은 분명히 당신을 몇 년간 괴롭힐 것이다. 그 긴 긴 세월을 인내하고 이겨내려면, 당신의 분노가 조금이라도 풀릴 때까지 법적인 한도 내에서 응징하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너무 심한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게 못내 후회가 된다. 아직까지 상간녀의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상간녀는 죄인 취급도 당하지 않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반드시 모두에게 알리고 그 죗값을 받게 하라.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학폭이나 외도는 동일선상에 어딘가에 있다. 외도는 성인이 된 채로 삶이 갈기갈기 찢긴다는 점이 다르다. 학폭 얘기가 종종 미디어에 나올 때면, 그 미성숙하고 어리고 여린 존재들이 온몸으로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물이 난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정말이지 평생을 좌우한다. 그들은 그 기억을 벗어나기 위해 적어도 10년은 부단히도 노력했을 것이다.
차라리 외도 피해자들끼리 만나는 편이 낫다. 그 고통이 얼마나 절절한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차라리 안전하다.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 고백하자면, 나도 환승연애를 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얼마나 상대방을 뼈아프게 하는지를.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르는 것도 죄다. 이번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환승연애를 했던 것이 미안했다.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나 이제와 사과하지도 못하는 게 속상할 만큼. 그래서 자주 생각했다. 결국 나의 업보라고. 내가 줬던 상처들이 결국 나에게 되돌아온 거라고. 웃기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하지 않았다.
지금도 불안하다. 내가 그를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이나 다른 사람들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도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은, 친구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이성까지 확대되었다. 검은 머리 짐승은 믿을 게 못된다. 그래도 이런 불신 속에서도 내가 그나마 괴롭지 않게 생활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믿는 사람이 소수나마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날 한 번도 배신하지 않은 사람들, 뿌리깊이 믿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
나는 남자를 믿지 못한다. 이 신념은 평생 갈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위치추적과 핸드폰 사용내역을 볼 수 있는 어플의 설치. 그리고 외부 어디에도 그를 내놓지 않았다. 그는 출근과 퇴근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외부활동만 가능하다. 회식도 못 간다. 이성 지인은 당연히 못 만난다. 검은 머리 짐승이란 믿고 자율에 맡기면 꼭 배신을 한다. 이게 내가 그를 곁에 두는 이유다.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을 만나봐야 이걸 이해해 줄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이게 차라리 덜 괴롭다. 누굴 만나도 의심할 것이다. 진짜 야근을 하는 건가, 출장을 간 게 맞나, 끊임없이 의심할 거다. 외도 후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 몰라도 될 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남자의 50%가 외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비율은 소득이 높을수록 올라가는데, 고소득층은 60%가 넘는다. 누굴 믿으라는 건가. 이 세상엔 매력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고, 나에게 매력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이다.
본능에 충실한 사람은 피했으면 좋겠다. 본능이라 함은 가장 기본적인 식욕, 성욕, 수면욕. 사실 이 기본적인 욕구들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만 봐도 절반은 거를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나을 수도 있다. 놀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공부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통제력이 있다는 뜻이다. 이제 와서 내가 다시 남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이 두 가지를 먼저 볼 것 같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재밌는 사람을 좋아한다. 같이 있을 때 재미가 없으면 내가 자꾸 밖으로 나돈다. 더 재밌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가 그런 사람인 걸 어쩌겠나. 재밌는 사람은 어딜 가나 인기가 많다. 외도의 확률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산다.
이 모든 고통을 견디는 것도, 선택한 것도,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한 친구가 나를 뜯어말렸다. 나는 너무 지쳤다. 그만해, 하고 말했다.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응원해 주세요. 잘못된 선택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겪어낼 테니까.
다른 친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너도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하겠지, 너도 내가 한심하지,` 하니,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해. 나는 내 의견을 말할 뿐 결국 선택은 너의 몫이고 나는 항상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나는 네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야.` 종종 인생에, 두고두고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말들이 있다. 그 친구의 진심 어린 응원과 위로는 꽤 오랫동안 나를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