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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우환 미술관이 왜 일본에 있을까?

나오시마, 안도 다다오, 이우환, 쿠사마 야요이

by 초록풀


- 값, 값어치 그리고 경험가치


친구들과 지난 11월에 일본 나오시마섬을 다녀왔다.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이다. 하지만 사실은 쓰레기섬이었다. 1차 세계대전 가동된 미쓰비시 구리제련소가 유독가스로 섬 전체가 죽어가던 '잿빛 섬', 산업 폐기물을 불법 투하하던 ‘쓰레기 섬’이었다. 섬을 살리자는 사회적 기업 배네세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87년부터 베네세 뮤지엄을 시작으로 지중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노란 호박 설치는 물론 ‘있는 것에서 없는 것을 창출한다’는 빈집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이들이 떠나고 버려진 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섬의 변신 스토리도 감동인데, 더 특이한 것은 한국 화가이자 조각가인 이우환의 미술관이다. 한국에도 없는 이우환 미술관이 왜 일본에 있는 것일까?


안도 다다오는 자연, 빛, 물의 조화를 건축에 녹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 빛의 교회‘는 벽면 한가득 뚫어둔 십자가를 통해 어두운 교회 안으로 빛이 들어온다. 마치 신이 들어오는 느낌. 자연스레 경외감이 생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원주의 뮤지엄 산만 방문해 봐도 건축물과 자연, 그 사이 여백의 미가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바로 느낄 수 있다.


이우환은 여백의 화가이다. 점과 선으로 대표되는 작품을 통해 여백은 단지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이 서로 강력한 에너지를 반향 하면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여백은 여백인 채로도 좋지만, 때론 관람자의 생각으로도 채워지며 또 다른 울림과 감동을 만들어 낸다.


“무지의 캔버스에 하나의 점을 찍는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리는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을 관계 짓게 하는 짓이다.


터치와 논 터치의 겨룸과 상호침투의 간섭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여백현상이야말로 회화를 열린 것이 되게 해 준다."


- 이우환의 <여백의 예술>-


안도 다다오는 권투선수였다. 전문적인 건축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기까지 비주류의 시절을 얼마나 힘들게 겪어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우환은 한국을 식민지화했던 일본에서 외국인 화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폄하와 시련을 견뎌냈을 것이다. 비주류라는 환경, 여백과 절제의 미를 화두로 삼았던 정신적 기반이 동일했기에 때문에, 국적도 전문 영역도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가보니, 이해하게 되었다.


지중 미술관은 언덕 속에 미술관을 넣었다. 언덕의 둥근 선을 헤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건물의 천장은 뚫려 있어, 천장이 프레임이 되고 흘러가는 구름과 하늘이 그 속에서 작품이 된다. 이우환 미술관은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바다와 하늘이 캔버스이다. 돌덩이 몇 개, 돌덩이 위에 기울인 쇠막대, 붉게 녹슨 강철판이 자연이라는 캔버스에 올려져 있다. 하늘, 바다, 잔디밭이 그 자체로 여백이 된다. 아…이 두 사람은 같은 마음이었구나…. 건축과 조각으로 영역은 달랐지만 지향점은 같았구나…. 전율이 느껴졌다. 왜 이곳에 이우환 미술관이 있는지 바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유튜브 영상만으로는 절대로 두 거장의 고뇌와 철학이 연결되는 지점을 느끼지 못할 것이리라. 와보지 않았더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 눈이 보고 있는 생생한 장면, 내 머릿속에 쌓여있던 두 거장에 대한 지식, 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고뇌에 대한 공감이 합쳐지면서, 두 거장이 함께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와~~~ 이 느낌만으로도 이 여행은 값어치를 충분히 했다.


이런 충만하고 진지한 예술 여행 속에 ‘값어치’란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일이 생겼다.


나오시마 섬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오전 내내 갤러리 투어를 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도착했는데, 재료가 소진되어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전날 거센 비바람 때문에 관광객이 다음날로 몰린 탓이다.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인근에 식사할만한 곳이 없었다. 새벽부터 내내 걸어 다니다 보니,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배가 고프고 짜증이 나는데, 한 친구가 편의점에서라도 간단히 때우자고 한다. 맛집을 고대했는데 편의점이라니 ㅠ ㅠ. 그런데 웬걸, 나오시마 편의점은 먹을 게 많았다. 갖가지 도시락에 과일, 디저트, 커피까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샀는데도 오만 원 수준이었다. 편의점 내에 먹을 곳이 없었는데, 순발력 있는 친구가 어디선가 구해온 돗자리만 한 검정 비닐 위에 상을 차린다. 다른 친구는 어디선가 벽돌을 주워와 앉을 곳을 만든다. 대단한 행동력이다. 편의점 도시락은 왜 또 이렇게 맛있는 것인지. 허겁지겁 먹다가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푸하하하 웃는다. 잠시 전까지 두 거장의 예술과 철학을 논했는데, 지금은 노숙자처럼 길바닥에 앉아 편의점 도시락을 까먹는 신세인데도 처량하지가 않다. 거지로 변신한 왕자랄까? 이런 노숙자 체험을 언제 해보겠나 싶기도 하고 마치 20대 대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여행은 의외의 용기를 준다.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다시 못할 경험이라 생각하니, 그 시선을 당당하게 맞받아친다. 한번 해보세요 신나요. 까르르르.


반면 그날 밤, 여행의 마지막날을 기념하기 위해 예약한 카이세키 요리는 정반대였다. 점심보다 10배 이상 비싸서일까? 호텔식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작은 그릇에 음식이 예쁘게 차려져 나와서 잠깐 와~했지만 그뿐이었다. 다들 기대 대비 별로라는 눈치였다. 어쩌면 기모노를 입고 일본 문화를 체험하며 먹었다면 우리의 평가나 분위기는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투입 비용에 준해 가격이 매겨지고, 가치는 그 가격 이상을 느끼게 해 주는 게 상식이다. 5만 원 점심과 50만 원 저녁. 값은 가이세키 요리가 더 비쌌지만 가치는 편의점 음식이 더 높았다. 편의점은 지불 가치 이상의 값어치를 한 것이고, 가이세키 요리는 하지 못했다. 하루 사이에 벌어진 두 식사의 극명한 만족도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음식의 차이보다도 우리가 겪은 경험, 다시 못해볼 당당한 노숙자 경험 때문은 아니었을까? 진지한 예술적 화두를 실질적 배고픔이 가볍게 뒤집어버린 반전의 경험, 밥 한 끼 먹자고, 동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상을 차린 삼시새끼식의 좌충우돌이 재미있었던 것 아닐까? 어쨌든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나름의 참여형 돌발 경험이 편의점 식사의 값어치를 높인 것은 분명하다. 주변에 누군가가 식당을 한다면 맛에 더해 경험을 디저트로 얹으라고 꼭 조언해 줄 것이다. 이제 세상은 하나만으로는 승부하기 어렵기에.


수년간 곗돈을 모아 온 여행이라 더 멀리, 더 멋진 곳으로 갈 수 있었는데도 나오시마를 고집했었다. 이 나이에 편안한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하나하나 직접 예약하는 수고로움까지 들이면서 말이다. 쓰레기 섬에서 예술의 섬이 된 반전, 안도다다오가 한국 작가 이우환을 그곳으로 불러들인 궁금증, 직접 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시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경험을 위해 더 좋은 호텔, 더 멋질 수 있었던 장소, 더 좋은 음식을 기꺼이 포기했는데, 정작 가장 재밌었던 경험이 노숙자 체험형 식사였다. 아이러니다. 여행이란 인생을 재발견하는 일이다’라고 하는데, 나오시마 여행에서 우리는 값과 값어치 그리고 경험이 주는 무한한 가치에 대해 재발견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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