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꼭 갈 거야 페루~~!
[페루편]
낯선 만남 속에 인연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은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삶의 태도, 진정성,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인생철학에 크게 감동하는 경우이다. 그런 분을 만나면 내가 먼저 나서서 인연을 이어가고자 노력한다. 일을 하면서 만나거나, 책을 통해 만난 분들이 주 대상이었는데, 먼 남미 패키지여행 중에 그런 분을 만났다. 페루의 여행 가이드 지수일 님이다. 인생 최고의 여행 가이드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함께 인연을 잇고 싶은 ’ 인생 가이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처음엔 말을 잘하는 분이구나 정도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해박함과 자신만의 역사 해석이 더해지며, 페루와 가이드님께 푹 빠지게 되었다. “처처유상수- 도처에 고수가 있다’는 말을 실감한 페루 여행이었다.
우리를 맞이한 지가이드님의 처음과 마지막 코멘트다. ’ 여행은 그 사람의 태도에 의해 더 풍요로워집니다. 여행을 통해 호기심을 채우는 것을 넘어, 이해와 애정을 담아 그들을 바라보세요. 여행이란 다른 문명과 문화 속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을 통해 내 삶과 주변에 더 큰 이해와 배려를 하게 되는 활동입니다. 이해와 연민 속에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과정, 여러분들의 여행이 이런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 처음엔 그냥 멋진 소리로만 들었는데, 그와 3일을 지낸 뒤, 헤어지며 다시 들을 때는 진한 울림을 주었다. 3일 만에 페루를 깊은 이해와 연민의 눈으로 보게 되었고 더 나은 내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열악한 시설에 대한 불만이나, 낮은 생활 수준에 대한 불편함 보다 과거와 현재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보고자 노력하니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먼저 나의 현재에 감사하게 되고, 이분들이 주시는 음식이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페루는 미스터리 한 석조 건축과 잉카문명의 시대를 지나 스페인에 수탈당하며 1824년에 독립한 나라다. 우리가 만난 쿠스코의 페루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알파카를 키운다. 직접 짠 알파카 옷을 팔고,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함께 찍어주면서 생계를 잇는다. 처음 부르는 가격보다 깎아 달라고 하면 그대로 다 받아주는 순한 고산지대 사람들이다. 몇 번을 흥정을 하다가도 몇천 원 차이인데, 이것이 이분들에게는 한 주간 먹을 빵값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분들의 하루를 행복하게 하는데 기여하자는 마음에 흥정을 멈추게 된다.
’ 소명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가이드님이 스스로 묻고 말한다.
‘저는 제가 내린 결정이 미래의 나에게 부끄럼 없이 다시 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소명의식하에 여행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나에게 떳떳한 모습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의 시간을 삽니다 ‘
그래서일까? 빈시간 없이, 어떤 질문에도 성의 있게 답변하고, 작은 불편에도 세심히 배려한다. 각자 인터넷 들어가서 작성하는 볼리비아 입국 서류도 일일이 작성해서 큐알 코드 촬영 후 보내준다. 아마도 우리 패키지 그룹에 은퇴하고 오신 60, 70대 어른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페루 관련 이슈나 남미 이슈가 생기면 뉴스를 보는 것을 너머 논문 검색이나 다른 나라 자료까지 찾아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페루, 남미 관광정보들이 잘못된 것들이 많아 참 안타깝다고 한다. 공부하는 가이드, 노력하는 가이드님이었다.
’ 페루는 꼭 가봐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다시 가야만 하는 곳입니다 ‘
’ 남미가 가진 모든 매력을 한 곳에 품고 있습니다. 고대와 현재, 밀림과 고원, 사막, 빙하가 있고, 사계절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번에 잉카 문명의 ‘사람들이 만든’ 삶의 터전을 보았다면 (마추픽추, 쿠스코, 삭사이 와망) 다음 방문에는 ‘신이 만든’ 페루의 자연을 보러 오십시오. 페루는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곳입니다 ‘
’ 문화재 복원은 또 다른 파괴일 수 있습니다’
‘가이드를 하다 보면, 현재의 사람들이 문화재 복원을 하려다가 또 다른 파괴를 만드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습니다. 현재의 과학 기술이 앞서있다고 자만하지만, 현대는 잉카인들이 만든 다각형 석축의 미스터리도 아직 풀지 못합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마야의 피라미드가 모두 원주율 파이의 공식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가 아직 해석하지 못한 고대의 수학, 과학적 이슈들을 미스터리라고 부릅니다. 현대인이 풀지 못한 과학과 수학의 영역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과학이 과거보다 앞서있다고 자부하는 우리는 과거에 대해 계속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제대로 하지 않는 복원은 또 다른 파괴일 수 있습니다 ‘
’ 엘콘도르 파사, 잉카제국은 사라지고 ‘
’ 마추픽추의 콘도르 성을 보며, 흘러나오는 엘콘도르 파사 노래가 이곳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궁금해 질문을 던지자 그만의 해석이 돌아온다. ’ 엘콘도르 파사는 원래는 연주곡이었는데, 사이먼 앤 가펑클이 가사를 달았지요. ’ 철새는 날아가고 ‘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어요. 잉카인들에게는 콘도르는 숭배의 새입니다. 엄청난 힘을 가진 새이지만, 죽은 것만을 먹이로 합니다. 산 것은 죽이지 않아요. 생명체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 고귀한 새입니다. 그런 정신을 대변하는 콘도르에게, 철새라는 표현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번역인 것이지요. 저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철새는 날아가고 가 아니라, 잉카제국은 사라지고 라는 의미로 들려, 마음이 먹먹합니다.‘
’ 무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해주는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
잉카인은 환생을 믿었고 태어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모태 속 태아 포즈로 죽으면 다시 그 모습으로 환생한다고 믿었기에 앉아서 임종을 합니다. 죽기 직전 살아있는 상태로 몸을 묶고, 태양이 뜨는 동쪽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들이 가장 숭배하는 태양을 보면서 임종을 맞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유골을 보면 대부분 이빨이 없습니다. 죽어가는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얼마나 악물었는지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당시 잉카인들은 뇌수술을 한 흔적이 있습니다. 두개골을 동그랗게 도려낸 유골들이 꽤 많은데, 귀족보다는 일반 서민들의 유골에서 발견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한 것보다는,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쁜 기운을 뽑아내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주술적 행위로, 그만큼 주술에 대한 믿음이 컸다는 것이겠지요 ‘
무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해주는 얘기는 무엇일까? 그 질문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두 가지 이야기에서 첫 반응은 무섭다. 황당하다, 미개하다일 수도 있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최선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를 위하는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시대에 당연하다거나 상대를 위하는 것이라 여기는 행동이나 문화 중에 어쩌면 미래에 우매한 행동으로 평가되거나, 주술적인 것으로 보일 것은 없는 것일까? 의문을 던져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무감각하게 넘기는 게 있지는 않을까? 잉카의 무덤이 오늘을 사는 내게 던지는 메시지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는 것이다.
’ 역사란 쓰여진 것이 아니라 쓰여질 것이다 ‘
’ 매달 국보급 유물을 팔러 나오는 젊은이를 도굴꾼으로 판단한 경찰이 그를 잡아갑니다. 젊은이가 산에서 주은 것이라고 항변하길래, 아무도 믿지 않지만, 현장 조사를 위해 그 산을 가봅니다. 정말 그 산에서 국보급 보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됩니다. 사람들이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피라미드였습니다. 당시 페루 13개 왕의 무덤을 발굴했고, 발굴 유물로 피라미드 형상의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이 야산이 피라미드로 밝혀지기까지 피라미드는 멕시코와 이집트 위도 아래로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이 현장을 지휘한 박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고 발굴 현장에도 초대된 인연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 생각했습니다 ’ 역사는 쓰여진 것이 아니라 쓰여질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후로는 의심이 가거나 이해되지 않는 역사적 추론들에 대해 (최소한 페루에 관한 것이라면) 제 스스로 자료를 찾아가며 논리적 추론을 해갑니다. 팩트가 없는 역사적 추론이라면 산이라고 생각했던 페루의 피라미드처럼 언제 진실이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잉카의 마지막 왕이 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서도 100여 명의 스페인에게 어이없이 패했나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총의 막강한 우위, 유럽인들이 전해온 전염병. 총균쇠가 진단한 이유입니다. 마추픽추를 1200번 이상 방문하고 공부한 저는, 태양, 달, 별, 천둥 번개의 신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를 알기에 다른 해석을 해봅니다. 당시의 잉카 왕은 왕위 계승자가 아니라 서자였지만 실력으로 왕좌를 차지한 인물이고, 잉카 군대는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계속 승리해 온 전략, 사기, 역량이 탁월한 조직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렇게 맥없이 무너졌을 리가 없습니다. 당시 재래식 총은 지금과 같은 연발식이 아니었습니다. 한 발을 쏘고 나면, 장전에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들이 장전하는 동안 잉카 군은 제압할 수 있는 시간과 현저한 병력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저는 그들의 신 때문이라고 봅니다. 당시 병사들의 입장에서 상상해 본다면, 100여 명이 쏘는 총소리는 천둥신의 계시로 들렸을 것 같습니다. 거재한 존재를 드러낸 신을 향해 싸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조용히 신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그 총알을 맞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태양신을 숭배하기에 태양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는 문화를 가진 잉카인들에게 총소리는 천둥신의 목소리였을 수 있습니다.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더 나은 팩트가 나오면 과거의 추론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페루의 피라미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습니다. 처음은 누구나 서툽니다’
지가이드님의 마지막 당부도 멋지다.
’ 제가 처음 가이드를 시작했을 때입니다. 부끄러워 공항에서 팻말도 못 들었습니다. 첫 손님을 맞았을 때 마이크를 잡고 손님들만 보면 머리가 하얘져서 여행 내내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가이드가 어떤 설명도 못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할 말을 적어둔 메모지가 있다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긴장했습니다. 가이드의 기본을 못하니, 대신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하려고 애썼습니다. 마지막날, 손님 중의 한분이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하십니다. ‘지가이드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주었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겁니다 ‘ 땅으로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정성을 가지고 우리를 도우려고 하는 가이드는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반전의 멘트를 해주시더군요. 지금은 3시간도 8시간도 떠들 정도의 스토리와 내공이 축적되었지만, 처음은 엉망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습니다. 처음은 누구나 서툽니다. 그러니 다음 여행지 (볼리비아, 브라질)로 옮기시고, 가이드들의 서툰 모습을 보시더라도 진심으로 열심히 하고자 한다면 격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
페루를 떠나며 그분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사진도 한컷 찍는다. 한국에서, 또 페루에서 꼭 다시 만나자라는 약속과 함께다. 여행지에서 기분에 들떠서 한 약속이 아니다. 그 멀리 페루에서 만난 한국인 지수일 가이드님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언제나 배우고 스스로를 갈고닦는 태도는 늘 옆에서 배우고 닮고 싶은 기운이 있다. 진심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인생 가이드 같은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