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시골버스처럼 운행되는 우유니
[볼리비아편]
많은 곳을 여행을 했으나, 볼리비아만큼 첫 경험이 다양한 곳은 없었다.
바닷속 땅이 융기하여 해발 3,800미터 높이에 소금 사막을 형성해 둔 우유니 같은 곳이나 바닷속 뻘들이 땅으로 솟아 굳고 흘러내려 만들어진 달의 계곡 같은 곳은 상상 이상이다. 달에 첫발을 딛고 성조기를 꽂은 닐 암스트롱이 잃어버린 골프공을 찾다가 우연히 보게 된 어느 풍경이 황량한 달과 닮았다고 해서 ‘달의 계곡’이라 불린다.
해발 4천 미터 라파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불편한 느낌이 시작된다. 숨이 살짝 차고, 손끝 발끝이 저려오고, 머리가 멍해진다.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나타나는 경미한 고산증세다. 가이드의 첫 인사말이 고산증을 겪지 않으려면 뛰지 말 것, 술 마시지 말 것, 뜨거운 물에 샤워하지 말 것, 무리하지 말 것, 수면제 먹지 말 것. 하지 말라는 게 많은 것도 그렇고, 도착 당일 하루를 꼬박 쉬게 하는 일정도 처음이다. 고산증세를 겪고 보니, 스스로가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하고 잠만 자게 된다. 겪어보니 이해가 된다.
우유니, 달의 계곡처럼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천혜의 관광 자원이 있고 은, 철, 주석, 리튬, 천연가스 등 핵심 광물과 자원을 수출하는데도, 볼리비아가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것이 의아하다. 인구의 60% 이상이 최저임금 $300불로 산다고 한다. 며칠을 지내보니, 가진 것이 많은 이곳이 왜 최빈국인지 이해가 된다.
관광객들에겐 특이하고 멋진 풍경들이, 뒤집어 보면, 삶에서는 불편한 것이다. 특이한 육지 형성 과정으로 숲은 커녕 초원 지대도 거의 없다.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 등 대부분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해야만 한다. 수도 라파즈는 민둥산에 집을 촘촘히 지었는데 나무가 없다 보니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가 난다. 국그릇처럼 분지 형태다 보니 지하철을 만들 수 없어 케이블카가 대중 교통 역할을 한다. 타보니, 아래 집들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사생활 노출이 심하다. 산소가 희박해 불도 잘 붙지 않고 고산이라 압력이 낮아 라면 하나를 끓이려 해도 압력솥을 써야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에 나오는 부국의 4가지 조건이 떠오른다.
1) 위도. 온대는 잘 살고 적도 근처는 못 사는데, 볼리비아는 적도에 더 기울어 있다. 땅이 비옥하지 못하고 우기에 땅이 쓸려 내려가는 곳이다.
2) 바다. 자동차 기차 운송 대비 물류비가 낮은 바다를 이용하지 못한다. 1879년 바다 쪽 땅을 칠레에 뺏긴 이후 서로 원수가 되었다.
3) 지하자원. 풍부하지만 그것이 국가와 국민의 부로 연결되지 못한다. 포용적 제도와 관리 시스템이 없는 국가의 천연 자원은 오히려 없는 것보다 못하다.
4) 관리제도. 투명한 관리 제도와 시스템의 발달 유무다. 이 부문의 중요성은 수도 라파즈 공항을 이용하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볼리비아는 부국의 4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 나라였다. 우유니 같은 아름다운 곳을 가진 나라가 남미 최빈국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는데, 공항에서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부국의 조건에는 예측 가능한 관리 시스템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체계 없는 공항 시스템에 놀라다]
여행 버킷 리스트 1위가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물기가 살짝 어린 사막이 하늘과 연결되며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그곳을 가보고 싶었지만 최소 2주는 일정을 빼야 하니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세상에나, 코 앞에서 비행기를 놓친 거다. 항공도 아침 편 하나밖에 없는데 말이다. ㅠ ㅠ ㅠ ㅠ 해외 출장으로 일 년에도 수십 번 비행기를 타며 항공사 마일리지만 백만이 넘는 나와, 100개국 여행 목표아래 이미 90개국 여행을 해온 ‘여행의 달인’ 친구의 경력이 무색해진다. 기존의 경험만 믿고 가이드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탓이다. 가이드 가라사대, “여기 비행기는 시내버스 같아요. 사람 다 태웠다 싶으면 그냥 떠납니다. 시간, 게이트 수시로 바뀌니, ‘어디 가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피세요” (남미가 워낙 넓다 보니 패키지 여행인데도 나라 간 도시 간 이동에 가이드가 동행하지 않는다)
그날 국내선 게이트에 새벽 6시 반 경 도착했다. 출발 시간은 7시 40분. 라파즈 공항은 시골 버스 대합실같이 작고 소박했다. 게이트 6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유니 방문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공항 규모는 작아도 PP 카드 라운지가 게이트 바로 앞에 있다. 로밍을 해왔어도 통신이 잘 안돼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라운지에 들렀다가 7시 15분에 게이트로 나간다. 공항이 작고 게이트도 몇 발짝 앞이라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게 실수다. 우리 탑승 게이트 5번은 난데없이 산타크루즈행 승객들이 탑승 중이고, 6번으로 변경된 우유니행 게이트에는 pre-boarding이라고 뜨는데, 승객도 비행기도 없는 거다. 어떻게 된 거냐고 게이트 직원에게 물었더니, 우유니행은 이미 출발했다고 한다. pre-boarding 중이고, 출발 시간도 아직 멀었는데, 어떻게 먼저 떠날 수가 있냐고 묻자 보딩 타임에 게이트 앞에 스탠바이 안 한 우리 잘못이라고 되받아친다. 아뿔싸… 가이드 말이 사실이었다. 해외 관광객도 많고, 수도의 공항이니 타국처럼 출발 15분 전에만 보딩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상황 모르고 라운지에서 나오는 친구에게, 비행기가 떠났다고 하자 농담인 줄 안다. 로밍폰으로 현지 가이드에게 전화를 했더니 볼리비아말만 나오고 전화는 연결이 안 된다. 라운지 직원에게 이 말이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볼리비아 유심이 없어서 통화가 안된다는 거다. 아뿔싸….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만 출장을 다니다 보니 로밍이 안 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순발력 있는 친구가 가이드와 통화를 연결해 주면 사례하겠다고 하자 라운지 직원이 자신의 폰으로 전화를 한다. 가이드는 때마침 타 항공사 우유니행이 8시에 있으니, 그것을 시도해 보자고 한다. 자기는 대안을 찾겠다고 한다. 그때가 7시 50분. 10분 내로 1층에 내려가 티켓팅을 하고, 2층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게이트로 와야 하는 거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지만, 할 때까지 해보자는 친구가 먼저 1층으로 뛰어간다. 라파즈 공항은 해발 4천 미터다. 고산증이 오니 절대 뛰지 말라던 가이드가 떠오른다. 그 말을 안 듣다가 이 꼴이 됐는데, 또 말 안 듣고 뛰다가 뭔 일 생기는 거 아닌가? 그 와중에 내 친구는 고산증세로 나름 고생한 나를 챙기기까지 한다. ‘희연아 복식 호흡해. 뛰면서 복식 호흡하자!‘라고 외친다. 고산증 완화에 복식호흡이 좋다고 들었던 터라 캐리어를 끌고 뛰면서 복식 호흡하려니 참 웃픈 상황이다.
평생을 별러 온 거예요, 도와주세요라고 울먹이며 말한 우리에게 국영항공 BOA(볼리비아 항공) 직원은 ’ 비행기는 떠났다 ‘ ’ 오늘 우유니 비행기는 더 이상 없다 ‘고 단정적으로 말했지만, 민영 항공 에코젯 직원들은 분위기가 달랐다. 출발 5분 전 티켓 요청에 난감해했으나, 우리의 절박함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한다. 어딘가 통화를 하더니, 비행기 출발 시간이 30분 연기되었다며 티켓팅을 해준다. 각자 $162씩 추가 지불,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우유니는 가고 봐야 하지 않겠나. 티켓을 받아서 닫힌 보안 검색대를 열고 help us를 외치며 게이트에 도착하니, 8시 10분이다. 출발 20분 전. 안심할 수 없다. 조금 전과 비슷한 시간 여유인데, 아까는 비행기가 떠났었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선다. 게다가 티켓팅 당시는 게이트가 3번이라고 했는데, 10분 사이에 5번, 6번으로 계속 바뀐다. 무서워서 화장실도 못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우유니는 3번 게이트로 가라고 한다. 스페인어로 ㅠ ㅠ 우유니, 3번만 알아듣고 피난민처럼 따라갔지만, 전광판 정보는 여전히 우유니행 6번 게이트로 나와서 따라가야 할지, 그냥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무리를 따라가니, 좀 전에 티켓팅을 해준 친절한 직원이 3번 게이트가 맞다고 확인해 준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타는 와 중에도 전광판에는 우유니 게이트 6번, pre-boarding이라는 안내가 흐른다. 아놔… 완전 아날로그다. 이러니 우리가 비행기를 놓친 거지. 조금 전 비행기를 놓친 상황과 동일하다. 아마 우리가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6번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했다면, 똑같이 비행기나 보딩 중인 승객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을 타이밍인 거다. 3번에서 보딩 중인 것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IT 관련 직원이 없는 것인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보 업데이트가 실제 상황과 다르다면 차라리 전광판을 만들어두지 말지. 제대로 업데이트가 안 되는 정보는 오히려 혼란만 키운다. 이후 볼리비아에서 국내선을 두 번 더 탔는데 모두 최소 10분에서 20분 일찍 출발한다. 탑승객 확인도 안 한다. 탑승 게이트와 보딩실제 상황과 전광판 정보가 다르다. 짐도 전광판 정보상의 벨트가 아니라 다른 항공사 벨트로 나온다. ㅠ ㅠ 아마도 한대의 비행기로 여러 곳으로 효율성을 높이려다 벌어지는 현상이지 싶다. 독과점하에서 고객보다는 그들의 효율성과 편의성이 먼저인 거다.
14년 만에 볼리비아에서 24년 초 인구 조사를 했다고 한다. 지역 보조금, 정치가의 수 등, 여러 복잡한 이슈들이 겹쳐 있어서 인구 조사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한다. 하루 전 인구 조사를 한다는 기습 발표를 하고, 비행기 포함 모든 공공 교통수단을 정지시켰다고 한다. 모두들 자택에 머물러 있으라는 통보와 함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조치다. 여행의 정의에 대해 진한 감동을 주었던 페루 가이드 거라사데, 여행을 다니며, 그 지역의 차이를 이해와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 속에서 더 나은 내가 되어 갈 것이라고 했는데, 연민은 생기나 이해는 되지 않는 상황을 당하고 보니, 예측 가능성을 갖게 하는 공적 시스템과 관리제도의 유무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고객 만족에 진심인 우유니 현지인 열정에 놀라다]
비행기를 타느라 진을 뺏지만 우유니는 환상이었다. 평생의 버킷 리스트답게 상상 이상의 풍경이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한국인 가이드를 보조하는 현지인 알렉스와 서포터들이다. 그들 덕에 우유니의 하루는 어떤 날보다 밀도 있는 시간이 되었다.
도착하니, 4인용 지프차에 태워 블루투스로 핸드폰 음악을 연결하라고 한다. 땅과 하늘의 구분이 없는 곳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풍경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들게 한다. 그저 아름답고 그저 좋다. 한참을 달려 소금 사막 가운데 텐트에 도착한다. 캬~~ 텐트도 풍경과 어울리며 한 폭의 그림이다. 선발 서포터들은 이미 다양한 과일과 음식을 차려두고 라면을 끓이고 있다. 고산지대에서 끓이기 어렵다는 라면은 예전에 융푸라호에서 먹었던 환상의 신라면 맛을 제꼈다.
이후 서포터들은 다양하고 재밌는 퍼포먼스를 시키면서 우리에게 평생에 남을 사진을 만들어 준다. 드론으로 촬영도 한다. 어찌나 재미나던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다. 저녁이 되자 하늘과 땅이 모두 붉게 물든다. 낮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장관이다. 밤에는 별이 쏟아진다. 몽골에 별구경을 하러 갔다가 별이 많이 없어 실망했었는데, 우유니는 별이 쏟아진다. 남반구인데도, 북반구에서 본 오리온이 있다. 반면 카시오페이아는 보이지 않고 남반구에서만 보이는 남십자성이 빛난다. 깜깜해서 사진 촬영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특수 카메라와 조명으로 쏟아지는 별빛 속의 우리를 촬영한다. 낮, 노을, 별 모두 감동의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을 담아주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도 정말 감동이었다. 책은 도끼다의 박웅현 님이 ‘기억하는 최고의 방법은 감동을 주는 것’이라 했는데, 평생 잊지 못할 감동,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거 같다.
문득 느끼게 된다. 세상 어느 곳이든, 어떤 민족성이든 간에 성취의 기쁨과 성장이 있고 동기 부여가 있는 곳에는,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현지인 알렉스는 3년간 한국어를 배웠다는데, 능숙하게 잘한다. 실력을 다지기 위해 일부러 더 한국말을 많이 하는 것도 같았다.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카메라 기술과 다양한 촬영에 대해 어떻게 배운 거냐고 물으니, 한국 관광객들이 우유니에 대해 감동의 기억을 갖고 가기를 바라서 친구들과 엄청 연구한다는 것이다. 진심과 성심이 베어나온다. 그래서일까, 밤늦게 돌아온 우리 멤버들은 이구동성으로 알렉스와 서포터들에게 성의를 표하자고 한다. 진심의 노력에 고객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어디나 지극한 정성에는 마음이 열리는 거다.
볼리비아에서 극단의 두 가지 경험을 했다. 국영 항공의 상황에 맞지 않는 디지털 정보 운영으로 비행기를 놓친 불쾌한 경험을 한 반면, 고산 환경 탓에 느리다는 평을 듣는 볼리비안 인 속에 고객 만족과 감동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알렉스 같은 개인들은 많다는 것을 말이다. 비행기만 조심한다면 볼리비아는 강추다. 우유니는 꼭 가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