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에 과몰입한 사람들
최근에 한 회사에서 MBTI 검사 결과를 제출하라는 채용 공고를 냈다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특정 MBTI 유형은 지원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중에 제 유형도 있었고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MBTI에 과몰입하고 있구나 하고 먼 발짝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약간 당황스럽고 놀랍기까지 하다.
어제 있었던 온라인 모임에서는 MBTI를 극혐 한다는 분도 있었다. 사람을 일반화, 유형화할 수 없는데 그걸 어떤 분이 "아 OO님은 ISTJ니까 저랑은 상극이겠군요~" 이렇게 말해서 불편했다고 했다.
MBTI는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다. 4가지 선호 지표를 통해 총 16가지의 경우의 수가 나온다. 처음 만나거나 서로 친해지기 시작할 때 "MBTI"가 주제로 많이 나오는데 그건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에 대해서 파악하고 유사한 부분을 찾으려 할 때 나오는 주제라서 그런 것 같다. 4가지 선호 지표는 아래와 같다.
선호 경향
에너지 방향: 외향(E), 내향(I)
인식 기능: 감각(S), 직관(N)
판단 기능: 사고(T), 감정(F)
생활양식: 판단(J), 인식(P)
최근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혈액형을 물어봤다가 "요즘은 혈액형 안 묻고, MBTI 묻던데요? OO님은 MBTI 어떤 거 나와요?"라고 되묻는 사람을 봤다. 시대에 뒤처진 건가 아차 싶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후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월드컵 때 이야기하는 느낌?
그리고 1월에는 새해를 맞이하여 호기롭게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었다. 온라인이라서 기대를 안 했는데 예상보다 함께하는 분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고, 오프라인으로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실제로 만났다. (처음에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니까 민망하고 멋쩍고 낯설고 이상했다.)
거기서도 MBTI가 소재로 나왔다. 아무래도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어색하니까 MBTI의 공통 주제를 통해서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 같다. 어떤 분은 나를 만나기 전에 내가 쓴 글을 읽고 내가 "NT"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N은 직관형을, T는 사고형을 말한다.) 나는 약간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맞은편에 앉았던 분도 나에게 NT일 것 같다고 했다.
난 사실 외향(E), 내향(I) 말고는 MBTI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다른 유형들의 특징도 몰랐는데, 그것은 내가 INTJ여서 그런 것 같다. (INTJ는 이제.. 예.. 사람들한테 관심 없고 본인한테만 관심 챙기는 그런..근데 이제 관심있는 척하는 페르소나를 여러 개 달고 사는..)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꼈던 사람들 중에 MBTI 이야기가 나와서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INTJ였다. 사고의 흐름이 비슷해서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낀 것 같다.
한 편으로는 MBTI는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거나 그를 이해해보려는 도구로 쓰인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상대의 MBTI 유형 특징을 모르면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한 시대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안정감과 확실성을 찾기 위해서 MBTI에 몰입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 마케팅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던 “테스트”도 같은 연결 선상에서 인기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스낵테스트 같은 것들 말이다.
MBTI가 서로를 이해하거나 예측하기 위해서 쓰이면 좋지만, 누군가를 단정 짓고 평가하는 데 쓰이면 불편해진다. 예를 들어 나와 잘 맞지 않는 MBTI 유형이라고 해서 거리를 두거나 비합리적으로 채용공고에 성격의 유형화까지 요구한다면 좀 섭섭할 것 같다.
MBTI는 검사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내향형이라고 해서 외향형의 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이 더 비중을 차지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변화하는 생물이다. 그래서 더 다채롭고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MBTI의 16가지 유형은 완전한 흑백처럼 색으로 구별되는 게 아니라, 명도와 채도 차이로 톤을 나누는 그레이스케일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MBTI가 서로를 조금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쓰이면 아주 이상적일 것 같다.
누군가는 인간은 불안정한 상태가 디폴트 값이라고 말했다. MBTI가 하나의 방편이 될 수는 있어도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MBTI는 MBTI대로 고유의 영역으로 두되, 개인의 고유성, 유일성, 장점, 개별화를 받아들여 MBTI와 개별화를 각각의 매력으로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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