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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밤 과자점 Oct 23. 2022

상사와의 궁합

가치관의 문제

얼마 전 회사에서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만났던 상사 중에 궁합이 제일 잘 맞았던 사람은 누구였어요?"


답을 하기 위해 고심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 일했던 부서장님들을 떠올렸다. 직상급자 외에 차상위 상급자도 떠올려 보았다. 한 사람을 딱 꼬집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무난하게 관계를 맺었고, 유대감이 강했던 상사도 있었고, 업무를 진행할 때 많이 지적하던 상사도 있었다. 때때로 나의 장래를 생각해주며 충고해주던 상사도 떠올랐다. 그들 모두가 궁합이 맞았던 걸까? 아님 그냥 그저 그런 사회생활의 단편이었을까?


"답하기가 어렵네요. 일단 상사와의 궁합은 뭘까요?"

"묻고 보니 그렇네요. 인품이 좋다고 잘 맞는다고 하기도 어렵고, 일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궁합이 좋다고 하기도 애매하네요."


그랬다. 연애와 결혼할 때의 궁합과 일터에서 만나는 상사와의 궁합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동료가 다시 말을 건넸다.


"저한테 상사와의 궁합은, 제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꼼꼼함이 부족하지만, 상사는 꼼꼼하거나, 제가 불안이 심할 때, 차분하게 가라앉혀 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지닌 사람이 저한테는 궁합이 좋은 상사라고 생각되네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결혼할 때 배우자감으로 좋은 사람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상사와의 궁합도 그럴 때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와인과 안주의 마리아쥬처럼, 각자의 풍미를 극대화시키는 느낌으로? 그러나 서로 부족한 부분이 다르면 그래서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상대에게는 그 부분이 강점이니 서로의 약점이 드러날 때 크게 실망하거나 화가 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한 분이 떠올랐다. 이전 회사에서 함께 오랜 시간 근무했던 상사분이었는데, 일하는 방식이 온전히 내 취향이라거나, 대단히 완벽한 인격체라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분이 나와 궁합이 맞았었다는 느낌은 '인사업무에 대한 가치관'에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HR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 HR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HR팀이 주의해야 할 행동들, 이러한 면에 있어서 그분은 나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랬기에 그분이 지시하는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고, 같은 부분에서 분노할 수 있었으며, 조금 서운하더라도 그분의 인사팀 운영방식을 수용하고 불평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 조직에서 나는 궁합이 잘 맞는 상사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공무원이라는 조직의 특성상 어떤 개인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업무라기보다는 정책적 판단으로 움직이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함께 했던 부서장님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인사업무를 대하는지, 인사업무의 중요성을 어디에 두는지 사실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내가 요즘 인사업무를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시원하게 '그렇습니다'라고 답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어떤 조직과의 궁합, 상사와의 궁합도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Value'를 정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더 좋은 회사란, 물질적 보상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정신적 보상으로서 나와 같은 길을 가는 회사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결혼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찾으라는 것처럼. 우리는 1, 2년 같이 일하고 헤어지기보다 오랜 시간 함께 할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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