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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Mar 01. 2021

브런치 백일째 되는 날 새벽

봄비가 오네요


11월 22일 첫 글을 올리고 3월 1일 백일 째 되는 오늘 반가운 봄비가 내린다. 새벽이다. <깊은 밤 기린의 말>이라는 표지의 단편 소설집을 읽고 있다. 김연수 박완서 윤후명 이승우 등등 유명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내공들이 심해수처럼 깊은 소설들이다. 보가 음미하기 딱 좋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전복과 산삼을 넣어 하루 동안 달여 만든 토종삼계탕을 떠 먹여 주는 듯한 문장들이다.


거실 창 옆 소파에 조금 눕듯이 앉아서 노란 스탠드 등 하나를 켜놓고 탭슈즈를 신고 탱탱 거리며 왈츠를 추는 빗소리를 들으니 사뭇 감성이 돋는다. 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물 마시는 소리가 옹달샘에 온 토끼인 듯 어여쁘게 들린다. 앞에 놓인 앉은뱅이 테이블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이런저런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최소 5년은 된 작가의 거실 같다. 뭔가 있어보인다.


오늘은 영화감독님과 시나리오 첫 회의가 있는 날이다. 두시에 만날 예정인데 소풍 가기 전날 아이처럼 설레어 잠을 뒤척이며 설쳤다. 정말 소풍을 가는 거였다면 이 비를 보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며 걱정했겠지. 하지만 지금의 이 경쾌한 빗소리는 올해 내 글 농사가 풍년이 될 거라고 알려주는 반갑고 정겨운 피아노 곡처럼 들린다. 내친김에 쇼팽의 왈츠를 튼다. 비와 쇼팽의 협연은 아름답다 못해 간장을 녹여 내린다.


며칠 전에는 <이 땅에 태어나서> 독후감 공모전에 응모를 했다.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을 읽고 아산정신에 대한 감상을 쓰는 것이었는데 상금 총액1억을 넘는다. 웬만한 문학상들과 비교해도 엄청난 금액이었다. 독후감 4장에 대상 한 명에게는 천만 원 그리고 나머지 48명의 당선자에게도 칠백만 원부터 최소 백만 원씩은 쥐어주는 대기업의 블록버스터 급 말 그대로 독후감 대잔치였다. 상금에 눈이 멀었다기보다는 (매력적이기는 했다) 독후감이라는 좀 가벼운 장르이기에 나의 첫 공모를 시도했다. 응모하는 엔터를 누르는 순간 보스턴 마라톤 경기의 총성을 들은 것처럼 두근거렸다.


이제 시작되었구나. 나의 등단 마라톤. 무라카미 하루키 김연수 등 유명한 작가들은 다 한다는 달리기. 나도 3월부터는 달리기를 시작한다. 맑은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작가적인 뇌와 작가적인 육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는다. 그리고 나만의 심장 박동을 만들어 갈 것이다. 아무에게서도 들을 수 는 개성 있는 리듬. 심장박동. 꿍짝짝 꿍짝짝.


쇼팽이 쇼팽의 왈츠를 가졌듯이 박지아만의 글로 만들어 낸 소나타를 작곡할 것이다. 그 소나타에는 통통 튀는 여우도 뛰어놀 것이고 우주괴물도 춤을 추며 하루 종일 울기만 하는 노처녀도 있을 것이고 고뇌하는 가난한 소설가도 등장해 각자의 인생을 연주할 것이다. 비루하든 행복하든 나는 태어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봄비와 쇼팽의 왈츠가 나를 조금 흥분하게 만드는 것 같다. 밤에 쓰는 글처럼 두서없고 감성만 앞선다. 여러분들도 오늘 쇼팽의 왈츠곡 모음 들으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끝내고 술래 바로 뒤에 붙어있는 것처럼 다가선 봄을 만끽해보시기를... 백일을 맞아 신난다기보다 첫 데이트를 앞둔 여학생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글을 써본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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