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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Dec 22. 2020

얼굴도 안본다는 셋째 피디

예능전쟁터 25년 참전기 23

얼굴도 안 본다는 째 피디

     개그계의 신사 주병진 토크 콘서트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 엄청난 게스트가 출연했다. 바로 개그계의 원조 신사 주병진 씨였다. 참으로 오랜 휴식 후 출연한 터라 파장이 엄청났다. 개그맨으로서 뿐 아니라 기업인으로서도 대단한 성공을 한 후 개인적인 안 좋은 일 때문에 긴 소송이 있었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지만 방송으로 복귀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전 국민도 그의 입담이 이끄는 대로 80 -90년대 코미디 그리고 버라이어티 전성 시대로 확 빨려 들어가며 환호했다.   

   

 내 장점이 딱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엄청 민감한 촉 그리고 엄청 엄청 스피디한 추진력이다. 심야 11시 시간대에 하는 프로그램인데 밤 12시쯤 대표님께 바로 전화를 드려 다그쳤다. 주병진 씨를 계약해야 한다고 누구보다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대표님도 촉이 장난이 아니다.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하셨다.     


 다음날 그동안 기획팀에서 만들어 놓은 기획물들을 다 프린트했다. 엄청난 양이었다. 넣을 봉투가 없어 보자기를 구해 보자기에 쌌다. 마치 법정에 오르는 검사가 된 기분이었다.      


 당시 주병진 씨는 홍대 앞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 중이셨다. 대표님과 나는 찾아뵙겠다고 전한 후 바로 출동했다. 과연 가게가 깔끔하고 세련됐다. 빤스 하나로 엄청난 기업을 일군 사업가 기질이 한눈에 엿보이는 솜씨였다.      


 어릴 때부터 전 국민의 웃음을 모아 모아 이끌어내고 이경규 노사연 그리고 이소라와의 세련된 케미를 자랑하던 바로 그분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피디고 국장이고 나발이고 간에 확 매달려서 끌어안고 싶었다. BTS를 눈앞에서 본 아미들의 심정이랄까? 억지로 달려가려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간신히 인사를 드렸다.     


 소개를 하고 존경한다고 하고 영광이라고 하고 압수 수색하러 나온 사람들 모냥 보자기에 싸인 산더미 기획서를 보여드렸다. 대표님은 파격적인 계약 조건을 전해 드렸다. 처음엔 혹 하지 않으셨다. 그 뒤로 많은 대형 기획사들이 승냥이 떼처럼 가게 앞에 줄을 섰다. 피 튀기는 [주병진을 잡아라] 전쟁에서 글레디에이터와 암탉 복식조가 승리의 깃발을 낚아챘다. 우리 회사에서 몇 년 동안 몇 편의 작품을 하기로 계약이 성사되었다. 칭찬에 박한 대표님이 오랜만에 수고했다 하셨다.      


 늘 그렇듯이 문제가 또 뒤따랐다. 당연히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내가 연출하게 될 줄 알았다. 기획도 제작사가 섭외도 우리가 그리고 더군다나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이 된 마당에 MBC 예능국 선임 피디님이 연출을 한단다.  당연히 같이 화내실 줄 알았던 대표님은 그분이 나름 MBC 예능국 선배 피디였던 터라 의외로 순순히 수긍하셨다. 핵심은 내가 그 프로그램을 연출할 만큼 역량이 안되며 그 본사 피디가 백전노장이니 훨씬 더 연출을 잘할 거라 생각하신 것 같았다. 아 정말 너무 싫다. 이불 킥이라는 걸 실제로 해봤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첫 회가 방송을 탔다.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첫 회를 끝으로 본사 예능 피디가 손을 들었다. 연출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주병진 씨를 여느 연예인처럼 생각했던 모양이다. 주병진 씨는 기업을 성장시킨 사람이다. 엄청나게 까다롭고 자기 생각이 있을 텐데 맞춰나가지 못한 것이다.     


 연출이 제작사로 넘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출은 내가 아니었다. 또 MBC 출신 예능 피디로 우리 회사로 이적한 피디가 연출을 맡게 되었다. 지상파 출신이 아닌 내게 맡기지 못하겠다는 뜻이겠지...     


 4회 정도 더 이어가며 첫 회 때 한번 빵 터진 시청률은 기하급수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나는 매주 수요일 밤마다 악플 달까? 하면서 오징어를 씹어댔다. 5회 녹화 준비하면서 두 번째 피디가 대표님께 더 연출을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5회 방송이 나가는 날 밤에 대표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너 밖에 맡을 사람이 없다고 연출을 맡아 달라 하셨다. 자존심 상해서 튕기고 싶었지만 내 것이 나에게 돌아왔으니 받아들였다. 바로 6화를 준비해야 했다.      


 6화는 위대한 실패의 탄생이란 소재로 각종 사업에 실패한 연예인들을 모아다가 오디션을 했다. 시청률이 급 반등했다. 사업이라면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 주병진 씨였기에 내용이 뜬 구름 잡지도 않으면서 너무 재밌었다.      


 다음 아이템은 희귀 게스트 배철수 최백호 구창모 님을 모시고 80-90년대 음악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분들을 모시고 목욕탕도 가고 홍대 클럽에서 실제로 음악 콘서트도 했다.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했다. 다음 아이템은 주병진 씨와 동시대 스타 개그맨들 이성미 이경실 전유성 임하룡 이경애 이휘재까지 싹 다 모아서 대학생 엠티 형식으로 촬영을 했다. 이것도 대박이 터졌다. 그 뒤로도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신개념 움직이는 토크쇼를 원 없이 만들어 봤다.      


 공은 아무리 가져가려 해도 자기 것이 아니면 뺏어 갈 수 없다. 나는야 얼굴도 안 본다는 세 번째 피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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