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버스에서의 여행자
홍콩에서의 삶은 외국인인 나에겐 그 모든 이동 장소가 여행지가 되는 특별함이 있다. 세련된 도시의 빛을 발하고 있는 홍콩섬이 그러하고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자연의 빛으로 물든 다른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여행의 묘미가 있는 곳이다. 가끔씩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때의 운치에 맞게 무작정 혼자서 여행길에 오르고 싶은 때가 있다. 홍콩의 대표성을 띄고 있는 대중교통 중 피크트램, 빨간 택시, 그리고 여기저기서 보게 되는 2층 버스를 골라 타면 그에 맞는 각각의 여정을 더욱 실감 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홍콩은 면적 대비 인구밀도가 워낙 높아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2층 버스가 더 활발하게 이용되는 대중교통인 듯하다. 여하튼 나에게는 2층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그 여행자의 낭만 모드가 더욱 짙어진다. 운이 좋아 2층의 맨 앞에 앉을 수 있게 되면 더욱 완벽해진다.
버스의 앞 유리창에 겹쳐진 나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저 앞에 펼쳐진 세계를 사진에 담아내며 아름다운 여행자의 낭만을 만들어 간다.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정서에 물들어 가는 것도 마냥 싫지만은 않다. 그게 오히려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여유롭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에.
야경이 아름다운 홍콩섬의 센트럴을 지나가는 모든 순간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건물들과 어우러진 현란한 도시의 전광 빛 그리고 레트로 감성이 가득 담겨 있는 트램, 미니 버스, 빨간 택시 등의 일상적인 홍콩 모습이 마치 홍콩영화의 장면들을 파노라마처럼 연결해 놓은 것 같았다. 옆에 앉아 있는 로컬 홍콩인은 나의 감격스러운 눈빛과 마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정한 여행자의 기분을 한껏 만끽하게 된다.
한 번은 하이킹을 다녀오는 그 길 숙소로 한 번에 가는 2층 버스를 타고 오는 시간이 있었다. 운이 좋아 2층 버스 맨 앞에 앉을 수 있었고 그날따라 하늘은 무척 청명했으며 그에 반사되는 세상의 색채는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산이 있는 시골 쪽이었던 지역이라 이전 센트럴 도시 느낌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곳이 내가 아는 홍콩이 맞는 것인가 싶은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나아가는 버스 위에서 눈부신 태양빛에 심쿵하고 마치 장단이라도 맞추듯 하늘 위에 보여진 그림동화 같은 구름들에 한번 더 설레어진다.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흠향할 수 있음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유리창에 비친 나의 병아리 빛 후디 입은 모습까지도 잘 어우러진 것 같은 기분에 더욱 흥이 난다.
한참을 가니 이번에는 이전에 회사 동료들과 올랐던 계공령산의 산맥이 보인다. 이렇게 멀리에서 전체의 산 풍경을 본 것은 처음인데 그 자체가 절경이다. 이제는 귀갓길이 아니라 혼자서 투어버스를 타고 홍콩의 숨겨진 명소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음미하는 것 만으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다. 오전의 하이킹 일정이 그날의 주요 목적이었는데 이렇게 버스투어(?)를 하는 그 시간이 더 큰 이벤트 같기만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평범한 일이 여행자 모드로 전환되는 신기한 경험.
나는 이 자연 속 홍콩이 정말 사랑스럽다. 이전보다 더욱 홍콩을 사랑하게 되는 나 자신을 매 번 마주하게 된다. 삶의 여정은 매 순간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경험들로 감동하게 되는 순간들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시간을 모든 이들이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함께 하는 자연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그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함께 할 때 비로소 온전히 그 모든 자연의 선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