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의 삶이 끝의 시작일테니.
오늘의 홍콩 날씨는 언제 비가 오기라도 했었냐는 듯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태양이 그 쨍함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혹자는 변덕스러운 날씨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러한 홍콩의 여름이 좋다.
뜨거운 태양과 함께 어우러진 자연의 초록빛이 짙어갈수록 모든 만물이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올 초 홍콩에 처음 왔을 때에는 여름의 기온을 기대하고 왔던 것과 다르게 제법 추웠었던 기억이 난다. 별도의 난방시설이 구비되어 있지 않는 홍콩 호텔이라서 2월 중순의 밤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야만 그나마 보온이 되었었더랬지.
그런 와중에도 통유리로 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홍콩의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냥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때부터였지 싶다. 홍콩의 하늘을 자주 바라보는 취미가 생긴 것은.
작년 이맘때까지도 홍콩에서 삶의 여정을 보낼 것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였기에 지금도 가끔 놀라울 때가 있다.
우연한 기회에 본업인 해외영업을 위해 주재원으로 오게 되었고, 이렇게 현지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가만히 반추해 보면 그 모든 것은 우연인 것 같지만 나의 삶이 나를 위해 계획한 기적의 순간들이지 싶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담고 싶어 했고 그렇게 입버릇처럼
" 언젠가 나는 멋진 여행작가가 될 거야."라고 다짐하곤 했었는데.
그 시발점의 계기가 바로 이 홍콩의 여정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고백하건대 처음에는 홍콩에 오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었더랬다.
홍콩의 습하고 무더운 여름의 기온을 견디기도 두려웠고 나의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다른 나라에 나 홀로 생활하는 것도 원하지 않은 바였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여행을 좋아하고 업무 특성상 매 해 거의 매 달 해외출장을 다녔던 나인데 왜 그 순간은 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걸까 생각하니 이 또한 삶의 아이러니다.
어찌 됐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바로 홍콩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그 두려웠던 홍콩의 뜨거운 여름을 난 지금 한껏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맑고 아름다운 홍콩의 하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습함과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몸의 지침과 힘듦은 당연히 공존하는 바이다.
그러함에도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힘듦이 사라짐을 경험하게 된다.
비단 한낮의 하늘만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새벽녘 저 멀리 산과 어우러진 하늘의 해돋이의 과정을 보는 장관도 일품이다.
고요한 새벽 시간 얼마 되지 않는 시차를 두고 하늘의 빛깔을 바꿔 가는 경관을 보고 있노라면 내면의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는 쉽게 갖지 못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보는 하늘임에도 매번 다른 느낌의 감동을 받는다.
또한 하늘을 보면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뽀송한 흰 구름 떼를 보며 그림 맞추기라도 하듯 닮은 모양을 찾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에 따라 내면의 상태가 달라진다.
자연과 친밀해져 가는 이곳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조금 더 유연하고 여유롭게.
타국에서의 삶의 여정을 통해 성숙되어 가는 자아를 대면하는 모든 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계절의 선순환처럼 겨울의 끝이 시작이고 봄의 시작이 끝인 것처럼 나의 여행 에세이 첫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홍콩 이야기.
딱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그 또는 그녀에게 따스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 가고 싶은 소망을 담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