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다. 먼지는 정말로 엄마라고 부른다
고양이와 함께 산지 만으로 1년 1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내 삶은 너무나 달라졌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고 처음 말했을때, 내 찐친들의 반응은 충격과 경악 그 자체였다
"니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가? 고양이를??"
그렇다. 나는 사십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고양이는 물론, 강아지, 햄스터, 새 기타 등등 그 어떤 동물에도 그닥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귀여운 인형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키우지 않는 집에서 자랐지만 그래서라기엔 살면서 한번도 부모님께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자고 졸라본 적도 없었고, 일가친척중에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없었다. 기억속에 수시로 병아리를 사와서 혼나곤 했던 언니는 귀여운 생명체를 정말 좋아했던 듯 하지만, 언니가 사온 병아리에도, 그 병아리가 사라졌을 때에도 무관심했던 나다. 심지어 한 집에 사는 남동생이 고등학교때 햄스터를 길렀었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게됐다. (실은 동물 뿐 아니라 남동생에게도 무관심...... ) 초중등을 거치며 자라는 동안에는 주변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친구가 없었고, 고등학교때에 와서야 찐친 중 한명이 치와와를 기르게 됐는데, 그토록 소중한 찐친의 치와와조차 별로 감흥없이 바라보며 스스로 '나는 냉혈한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고양이를 기르게 된 건, 그저 아이들 때문이었다.
"애들이 하도 졸라서. 어쩔 수 없지 뭐."
그때만해도 그게 나의 진심이었다. 아이들이 '고작' 고양이 때문에,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서' 독립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싫었던 거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면 '우리 집'이 아니라 '내집'이고, '내'마음대로만 할 수 있다면 가족보다 '독재' 같다고나 할까. 어쨌든 애들이 졸라서 시작한 고양이와의 억지 동거에는 귀찮은 마음, 불편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우리 먼지.
먼지에게 밥을 주고, 간식을 주고, 털을 빗기고, 그냥 함께 앉아 있기만 해도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어디에 나가면 먼지가 눈에 밟히고, 빨리 들어와 먼지를 보고 싶어진다. 기분이 안좋은 일이 있다가도 먼지의 동그란 눈망울에 눈을 맞추고 먼지가 나를 핥아주면 마음속 깊이 위로받으며 평안을 느낀다.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있었냐고?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저 곁에 함께 있었을 뿐이다.
고양이를 키우니 좋으냐고 묻는다면, 정말 정말 정말 좋다. 하지만 '나도 고양이 한 번 키워볼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고양이라는 존재는 인형도 아니고 유튜브속 귀엽기만 한 생명체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 아기, 막내를 입양한 것과 같다. 아기처럼 돌보아주는 대신 아기처럼 나만을 바라보며 무한한 사랑을 준다. 아기는 자라며 엄마보다 친구를 좋아하고 이성을 좋아하고 언젠가 헤어지겠지만 동물은 아니다. 언제나 나를 향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을 보내며,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 느낌은 직접 키워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내가 애정을 쏟아 돌볼 대상이 있을때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먼지에게 느끼는 깊은 애정의 근원은 결국 내가 애정을 쏟아 돌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만을 위해 살 때에는 언젠가 인생이 허무하고 쓸쓸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내가 아닌 존재에게 사랑을 나누었을 때에는 비로소 행복을 느끼고 충만한 평안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만을 바라보는 우리 먼지. 그 모습은 마치 엄마가 이 세상의 전부인 서너살 아기 같다. 내가 거실에서 일을 하면 내 옆에 앉아 자고, 내가 화장실에 가면 문앞에 와서 앉아 있다. 내가 밤에 자러 들어가면 내 머리맡에 와 눕고, 내가 밤새워 일을 할때면 꾸벅 꾸벅 졸면서도 내 곁을 지킨다. 내가 설거지를 할때면 열심히도 지켜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엄마 하는거 잘 보고 다음에는 내가 할게요."라고 말하는 듯 하다. 밤에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 끙끙대고 있을 때에도 온 가족 중 먼지만이 나에게 와서 아픈 다리를 핥아주며 나를 위해 애써주었다.
고양이가 도도하다고? 아니다.
고양이는 주인을 주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과연 그럴까?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또 어떤가?)
아무렴. 나는 고양이 집사가 아니다. 먼지 엄마다.
전에는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우리 아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솔직히 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나 이해가 된다. 3개월때부터 지금까지 먹이고 재우고 사랑으로 키웠는데 엄마가 아니면 뭘까. 내 자식처럼 사랑스럽고 내 자식처럼 소중하다. 또 먼지도 나를 엄마로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먼지가 나와 우리 딸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분명 다르다. 우리 딸들에게는 같이 놀자고 껑충 껑충 뛰며 장난을 치지만 나에게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건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 먼지는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평소 잘 울지 않는 먼지가 어딘가에서 내 도움을 필요로 할때 냥- 냐옹- 냥- 하고 조용히 부르는 그 소리가 "엄마-"로 들릴때가 있다.
(착각이라기엔, 우리 딸도, 딸의 영어선생님도 깜짝 놀라며 얘가 엄마라고 부르네요, 라고 했다. )
이제는 그냥 내 막내 아이같은 우리 먼지. 내가 먼지를 사랑하는 것을 먼지도 안다. 또 먼지도 나를 사랑한다.
먼지가 어느 날 거울을 본다면 이렇게 말 할 것만 같다.
"엄마, 난 왜 언니들이랑 다르게 생겼어요?"
그럼 난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쓸데없이 상상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