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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Feb 21. 2016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낳은 불효자 얻은 효자

한 부잣집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먼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어 그곳에서 살림을 차리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영감이 아들 보고 싶어 찾아갔더니, 아들은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아 집이 비어 있었고 마당에는 장작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영감은 바쁜 아들 대신해서 그거나 좀 패놓고 가야겠다 싶어 장작을 열심히 패고 있었다. 좀 있으니 아들이 동료들과 집에 돌아왔는데, 동료들이 아들에게 저 어른은 뉘시냐고 물으니 아들은 일꾼이라고 대답했다. 영감은 그 말을 듣고 울화가 치밀어서 집에 돌아와서는 집이며 논이며 전부 다 판다고 내놓았다. 영감이 그러니 할멈과 싸움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다 팔고 우얄라 카노?”

“오야. 팔아 가주고 할마이캉 나캉 둘이 거처 없이 떠나야 되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가머 어디로 간단 말고? 자식 나두고.”

“아 자식이 그기- 그 자식이 좋으나? 자식이라고 생각되나?”

“자식은 자식이지 그래 뭐, 우리가 머를 믿고 사노?”

“오야, 자식이 그리 좋그덜랑 그 자식한테 할마이느 가가 살아라. 나는 내 걸음대로 간다.”

“빌어서 얻은 자식인데 자식이 좋지. 자식 나두고, 우리끼리 늙은 것이 어데 가서 사노?”

영감은 그러면 자식한테 가라면서 집과 논을 판 돈을 할머니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기도 챙길 만큼 챙겨서 짊어지고 정처도 없이 길을 떠났다.

영감이 강원도 지방을 지나다가 외딴 곳에서 오막살이 집 한 채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보고 찾아들어갔다. 젊은 부인이 아기 셋을 데리고 있었는데, 영감이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앉아 있으면서 집안 형편을 물으니 산골짜기에서 숯도 굽고 품도 팔면서 그럭저럭 먹고산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날이 저물었는데 일 나갔던 젊은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은 손님 왔다고 인사도 드리고 자기 사는 이야기도 하다가, 영감에게 자기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부인도 옆에서 맞장구치며 거들었다. 영감은 젊은 사람들이 참 착하고 좋아보였는데 형편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 안 그래도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차에 잘됐다 싶어 그러자고 하였다. 영감이 자기 돈으로 집과 논을 사고 젊은 부부와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젊은 부부는 부지런히 일을 하며 어른 대접도 훌륭하게 잘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영감이 사랑방에 있는데 웬 할멈이 고기 사라며 들어왔다. 그런데 가만 보니 자기 부인이었다. 할멈도 영감을 알아보고는 서로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놀라워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들이 부모는 안중에도 없고 하는 짓마다 못마땅하게 굴자 할멈은 영감이 강원도 어디에 있다는 소문만 듣고는 고기 장사를 하면서 무작정 영감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영감과 할멈은 남의 자식을 아들 삼고 남의 딸을 며느리 삼아 대대로 바랄 것 없이 잘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7-3, 394-399면, 안강읍 설화56, 낳은 불효자와 얻은 효자


구연자는 끝에, “사람됨이 그렇더라.” 하고 덧붙입니다. 영감과 할멈이 싸우는 대목도 실감나게 표현되어 원문 그대로 붙여 보았어요. 내 배 아파 낳아 금이야 옥이야 키워도, 자식새끼들은 크고 나면 제 멋에 큰 줄 알고 부모 알기를 뭐 보듯 한다지요. 생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서로 정 붙이고 진심으로 모시기 시작하면 그대로 내 어머니, 내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요. 사람됨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주고받음의 도리를 아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닌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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