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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Feb 03. 2019

타인의 필요

카드 잃어버린 사람 찾아가요!!

설 연휴를 앞둔 금요일 오후 여섯 시 지하철 1호선에 가득 찬 사람들. 같은 자세로 서서 아픈 무릎을 조금도 굽힐 수 없이 모르는 이들과 빽빽이 몸을 끼워 맞댄 1호선 동두천행 열차는 월계역을 지나고 있었다.


"이거 카드 빨간색인데 이거 누구꺼여?"


노약자석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몇 번을 외쳤다. 지하철 노선과 구간에 따라 앉아있는 사람들의 풍경도 공기도 다르다. 2호선 역삼~강남 구간에는 학생들과 양복을 입은 직장인이 가득하고 3호선 신사와 압구정역 구간에는 얼굴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1호선은 유난히 노인과 외국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종로 3가와 종각역이 클라이맥스지만 노선의 서쪽 끝 인천 부근과 북쪽 끝 소요산역도 외국인 노동자와 노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우리네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다른 노선보다 흔히 마주칠 수 있다. 종종 지팡이를 짚고 한복을 입으신 분들도 보인다. 보자기로 포장한 살아있는 닭이 안 보이는 게 이상할 만큼.



"아이참, 이거 카드 빨리 찾아야 허는데.."


"카드 떨군사람 누구야?"


노약자석에 붙어 앉은 노인 여섯이 카드 주인을 재차 찾지만 열차엔 정적이 흐른다. 코가 맞닿으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는데 말이다. 문이 열려도 사람들이 탈 엄두를 내지 못해 이내 다시 문이 닫히길 여러 번이었다. 콩나물시루처럼 들어찬 수십여 명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히터 바람과 체온이 얽힌 습한 객실 안에서 모든 사람이 피곤한 콧바람만 내뱉을 뿐. 열차의 반 이상은 선이 달린 이어폰과 무선 이어폰을 끼고 닭날개처럼 몸에 팔을 붙여 든 스마트폰만 쳐다봤다. 통화를 하는 사람들도 입을 가리고 속삭여서 열차가 철로를 지나가는 진동소리보다 크지 않았다. 그리고 삼분의 일 가량은 외국인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외침을 알아들은 몇 사람만이 재빨리 주머니와 핸드폰 뒤에 달린 카드지갑을 소리 없이 확인했다.



"아니, 카드에 다 영어여. 누구 건지 알 수가 없네~"


"아따 카드 떨군사람 찾아가요!"


"이미 내린 사람 같아~"


"빨간 카드 주인!!"


계속되는 외침을 듣다 못했는지 노약자석과 붙어선 누군가가 이름을 외쳤다. 카드에 조그맣게 영어로 새겨진 이름을 읽을 줄 아는 남자의 목소리다.


"박 00 씨! 박 00 씨!"


그제야 단발머리의 30대 중반처럼 보이는 여자가 이어폰 한쪽을 손으로 빼고 "어? 내 거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노인들이 그렇게 애타게 여러 번 불러서 찾아준 건데, 주인은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민망한 정적이 흐르고 노인들은 면구함을 달래려 금세 적막을 깬다.



"아이고~ 다행이네. 그거 나쁜 사람이 주워갔으면 마음대로 다 쓰고 그러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떨어트렸구먼."



노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카드는 아무도 못 봤거나 봤어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주인 잃은 카드는 어느 역의 분실신고센터로 갔겠으나 지하철 통합 분실물 센터로 가서 오랜 시간이 지나 버려졌을 것이다. 카드가 노약자석 부근 바닥이 아닌 일반 좌석에 떨어져 있었다면 빽빽한 사람들의 다리를 헤집고 카드를 주워 목청껏 주인을 찾기 위해 외치는 사람이 있었을까. 주머니에 꼬깃한 지폐와 노인 우대 승차권이 전부인 어른들에게는 카드가 금괴마냥 읽어버리면 큰일 나는 물건인 줄 알고 그렇게 애타게 주인을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 한 통, 어플 클릭 한 번이면 카드 정지가 되고 재발급받으면 되는 일인데. 구태여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카드 주인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숨결을 공유하고 코가 맞닿을 듯 붙어있지만 모든 타인이 필요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매일 같은 시간 꽉 찬 짐짝처럼 목적지로 실려가 황급히 각자의 집으로 흩어짐을 반복한다.


살결이 마주 닿고 숨결을 공유해도 우리는 서로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대중교통에서 나의 불쾌함을 높이는 쓸 데 없는 사람들이 어서 다 내려 공간이 쾌적해지길 바랄 뿐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엄지손만을 까딱거리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저마다 다른 볼거리와 읽을거리에 빠져있다. 모두가 한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세상에 집중한다. 철저한 적막을 비집고 노인들은 카드 주인을 찾아주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오지랖 넓다는 말을 듣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서로가 서로의 무료함이라도 달래는 상대가 된다. 어르신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게 자연스럽고 오랜 습관이다. 이마저도 손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소통하게 된 우리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다. 스마트폰이 없어 시선이 사방으로 향해 입과 귀가 트여있는 노인이 있어 아직까지는 공공장소에 단절과 소통이 함께 한다.


"내릴게요!"를 외치며 문 앞을 겹겹이 막아선 사람들을 헤집고 여러 명과 한 줄로 열차 바깥으로 터져 나왔다. 코로 훅하고 들어오는 찬 바깥공기에 목도리를 눈 아래까지 감았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우르르 뒤도 안 돌아보고 쫓기듯 개찰구로 향하는 인파 속에 잠시 멈춰 섰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열심히 카드 주인을 찾아주던 노인들의 마르고 굽은 어깨에 멀리서 봐도 낡은 털모자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곧 사라질 풍경 한 조각이 덜컹거리는 1호선 만원 지하철에 실려 철로를 따라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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