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그리는 마지막 잎새

by 기며니

폐렴으로 투병 중인 소녀가 희망을 접었습니다.

창밖에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사귀가 다 떨어지면 당신도 생을 마감할 거라면서요.


소녀는 10명 중 9명이 죽는다는 무서운 폐렴에 걸렸습니다. 이 파괴자는 옆 마을 사람들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갔어요.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는 폐렴을 '눈곱만큼의 인정도 찾아볼 수 없는 비겁하고 냉혈한 파괴자'로 묘사합니다. 이끼 낀 좁디좁은 골목까지 슬며시 숨어들어 공격하는 폐렴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병에 걸리지 않으려 각자의 집 문을 걸어 잠그죠. 가난과 두려움 속에서 소녀는 일상의 파괴자와 싸울 의지를 잃어갑니다.


의사들이 폐렴이라고 부르는 차갑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손님이 이 마을을 쏘다니면서 그 얼음 같은 손가락으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지고 다녔다.



우한 폐렴 사태를 겪으며 소설 속 묘사가 얼마나 생생했는지 체감했습니다. <마지막 잎새> 작가 오헨리도 폐결핵을 앓았고 어머니와 아내 역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핵도 코로나 19처럼 폐를 손상시키는 균 중 하나예요. 18세기 후반 결핵은 치료제도 예방제도 없는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모습이었답니다. 폐렴이 <마지막 잎새>의 주요한 소재인 이유도 여기 있겠죠. 소설이 발표되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폐렴 앞에 인간은 무기력합니다. 달나라에 여행을 가고 인공지능이 면접을 본다는데 말이에요.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과 정신을 공포에 가뒀습니다.


바로 옆 아파트에, 얼마 전 다녀온 병원에, 내가 매일 다니는 출퇴근길이 코로나 19 확진자 동선과 겹친다는 소식에 잠을 설칠 만큼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때도 있습니다. 내가 증상 없는 감염자일 수도 있고,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보균자일 수도 있다네요. 이제야 우리가 함께 호흡하며 공기를 나누고 살았음을 아프게 깨닫습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공기에 숨은 비겁하고 냉혈한 바이러스가 모두를 경계하게 만들었네요. 누군가를 통해 전달된 폐렴균 입자가 일 분 참기도 어려운 숨결을 파고들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코로나 19가 얼음 같은 손가락으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지고 다닐 때, 나와 보통의 우리들은 확진자와 전파자를 손가락질했습니다.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위험할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요.


버스와 지하철, 길거리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입을 볼 수 없어졌습니다. 마스크를 재사용하려고 천 마스크 위에 기능성 마스크를 여러 겹 쓴 시민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누군가가 기침이라도 하면 마스크 밖으로 빼꼼 나온 눈만 휘둥그레져 쳐다보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죠. 국내뿐만이 아니에요. 방역 원칙을 지키지 않은 신천지 신도들로 인해 코로나 19 확진자가 폭증했고 세계 80개국 이상이 한국인 입국 금지를 발표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전에 출국해 해외여행 중인 한국인을 보고 외국인 아이와 엄마가 소리 지르며 달아났다는 소식도 있었죠. 우리는 살기 위해 주변인들로부터 문을 걸어 잠겄습니다. 그리고 세계인도 살기 위해 우리를 향한 문을 차갑게 닫아버렸습니다.


재택근무, 개교 연기, 자가 격리, 입국 금지.

넓은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열려있던 모든 통로가 사라졌습니다. 가장 힘든 건 바이러스가 담긴 침방울 때문에 코와 입뿐만 아니라 눈까지 막아야 한다는 거네요. 배움과 노동뿐만 아니라 취업과 연결된 시험, 공연과 영화 관람 등 문화생활에 결혼식과 장례식 등 모든 일상의 문이 닫혔습니다. 집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사이 촘촘히 얽힌 돈벌이의 수레바퀴까지 멈추고 있어요. 주변에 문을 닫는 가게와 일을 쉬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어요. 매일 아침 코로나 확진자 뉴스를 보고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대구, 경북 지역 외에도 모두가 힘들게 일상을 부여잡고 계시죠. 매일 남은 마스크 개수를 세다 보니 문득 소설 <마지막 잎새>가 생각났습니다. 마스크를 잘못 만지면 겉면에 남은 바이러스가 손으로 옮겨온다는 말에, 마스크를 쓰고도 확진자와 몇 초간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감염됐다는 말에 점점 무기력해집니다. 빠져나갈 길 없이 사방으로 굳게 닫힌 문들만 보여요. 노력해도 걸릴 수 있고, 걸리면 손상된 폐가 원상 복귀되지 않는다니까요. 여기에 일주일에 두 장을 구하려고 줄을 서도 사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겼네요. 몇 장 안 남은 마스크가 사라지면 그냥 다 포기해버리고 말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확진자 수가 적은 서울도 이런데, 대구-경북 지역은 얼마나 상황이 심각할까요. 의료진들이 쓸 마스크와 방호복도 없데요. 내가 의사나 간호사 면허가 있는 의료인도 아닌데 무슨 도움이 되려나하던 찰나. 여러 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코로나 19와 전쟁 중인 대구-경북 지역에 지원군이 되는 분들을 봤습니다. 개학이 연기된 자녀들을 위한 책을 보내는 분들, 한 두장이라도 마스크를 보내는 분들, 모금활동에 오천 원, 만 원 익명으로 성금을 보내시는 분들, 손수 바느질로 마스크를 만들어 나눠주시는 분 등. 작고 보잘것없는 액수에 담긴 마음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마지막 잎새>에서 폐렴에 걸린 소녀를 살린 건 실패한 화가라고 손가락질받던 늙은 화가였습니다.

걸작을 그리겠다며 25년 동안 빈 캔버스를 준비했던 할아버지죠.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삶의 의지가 없으면 치료가 소용없다는 의사와 친구의 말에도 소녀는 현실을 등지려고 합니다. 거친 바람에 한 장씩 떨어져 내려가는 담쟁이덩굴 잎사귀와 스스로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파릇하고 단단하게 붙어있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늘 가난했던 현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겠죠. 소녀 역시 가난하고 이름 없는 화가였어요. 여섯 장, 다섯 장... 세 장... 매가리없이 떨어져 내리는 잎사귀는 어쩌면 통장의 잔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온 마을을 뒤덮은 폐렴으로 일거리는 없는데 치료비는 쌓이고, 40년 넘게 매일같이 그려도 실패했다는 수군거림을 듣는 바로 아랫집 사는 할아버지가 떠올랐겠죠.


기다림도, 생각도 세상 모든 것에 지쳐버린 소녀는 가장 고독한 모습으로 석고상처럼 이불속에 누워 침대 속에서 아주 먼 곳으로 여행할 생각만 합니다. 다락방에서 싸구려 방세를 내며 근근이 살아가던 소녀는 일상을 파괴하는 폐렴 앞에서 가냘픈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답니다. 오늘의 코로나19역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에게 합병증처럼 찾아와 생의 의지를 앗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연약한 노인과 지병이 있는 이들을 덮치고 있죠.


비겁하고 냉혈한 폐렴을 맞닥뜨린 소녀와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손쓸 길 없이 멈춰버린 일상 앞에서 줄어드는 마스크 개수 따위에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거고요. 창문을 깨트릴 듯이 불어대는 비바람 앞에서 삶의 의지가 꺼져가고 있을 때. 늙은 화가는 매서운 찬바람을 뚫고 벽에 잎사귀를 그립니다. 살지 않을 수십만 가지 이유가 담긴 소녀의 공허한 시선이 머무는 창밖 그 자리에 마지막 잎새를 정성스레 그렸데요. 그래도 힘을 내라는 말 한마디 대신 온몸으로 '희망'을 소녀의 마음에 그려 넣었답니다.


소녀가 폐렴을 이길 마음을 먹게 만들고 노인은 며칠 후 세상을 떠납니다. 이 늙은 화가는 감히 우리가 '실패한 인생'이라는 낙인을 찍었던 수많은 이들을 대표합니다. 여유 있는 수입이 없는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 그럼에도 바보같이 매일 성실히 자신의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요. <마지막 잎새>의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나 봐요. 전염병 앞에서 한 생명을 살리는 건 유능한 의술도, 성공한 사업가의 거대한 자본도 아니라고요. 극한 상황 속에서 내가 죽을 가능성을 안고 타인의 삶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요.


지금도 최선을 다해 코로나 19와 전쟁 중인 정부, 의료기관, 확진자와 가족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께서 뿜어내는 삶을 향한 의지에 존경을 보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바이러스와의 싸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요즘. 무력감에서 잠시 벗어나 대구, 경북지역에 필요한 물품을 정리해봅니다. 보잘것없이 작은 몇 장의 마스크와 자그만 소독제와 장갑뿐이지만 오늘을 시작으로 조금 더 보탬이 될 거리를 고민해야죠. <마지막 잎새> 속 문장처럼 우리 모두는 피 묻은 주먹에 숨결이 거친 늙은 협잡군 폐렴 씨의 정당한 사냥감이 될 수는 없어요. 마스크 한 장, 천 원짜리 한 장, 알코올 한 병도 마음을 담아 보내면 누군가가 살아갈 의지로 바뀔 거예요. 소녀가 폐렴을 이기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담쟁이덩굴 이파리 그림은 노인이 평생을 바쳐 그리겠다던 걸작임을 우리 모두가 알 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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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호물품 보내는 주소: 대구 경북지역 코로나 19 전담병원 주소

1. 대구 서구 평리로157 대구의료원 대외협력팀

2. 대구 중구 달성로56 대구 동산병원 별관 1층 코로나 상황실


- 기부금: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1. 대구: 대구은행 002-05-098038-501

2. 경북: 농협 282-01-003031 / 대구은행 180-10-004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