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바다, 태안
겨울에는 김장김치, 봄에는 제주에서 올라온 무로 담근 무김치, 여름엔 열무김치를 담근다는 두 주인 할머니.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벌써 무김치를 냈을 텐데 아직도 겨울 김장 한통이 남았다며 아쉽단다.
똑 닮은 두 주인은 동네 노인들의 일정도 꿰고 계신다. 오늘 병원 가는 날인데 바꾼 약은 어떻냐는 주인 할머니의 물음에 "약이 독해 밥 한술 못 떴는데 여기 칼국수는 술술 넘어간다."라고 할아버지가 답한다.
좁은 가게가 꽉 차 옹기종기 동석한 어르신들이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며 주인 할머니들에게 응석을 부렸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여기만 오면 배가 터지게 불러서 힘들다며 굳이 외투를 열어 내복 위로 볼록 솟은 배를 내놓자, 주인은 "많이 드려 매번 죄송하다"며 깔깔거린다.
국물 떡볶이 마냥 자꾸 퍼먹고 싶은 국물 자작한 김장김치도 접시 가득 담아주신다. 어르신들은 바닥이 보이게 다 먹고 김치 한 접시 추가요를 외친다. 밥 한 그릇 다 먹은 아이에게 장하다고 칭찬하듯 주인 할머니들이 어르신 잘 먹어서 이쁘다고 웃는다. 신기한 김치다. 동치미처럼 싱겁지 않은 보통 김치 간에 국물은 또 삼삼하다. 무조건 리필각이다.
그릇이 넘치게 담긴 바지락 위로 방금 갈아낸 깨를 한 움큼 뿌린 칼국수. 테이블마다 놓인 깨끗한 물병엔 끓여 식힌 보리차가 구수한 금빛이다. 4000원에 담기엔 넘치게 큰 마음이고 말이 안 나오게 맛있는 국물과 면이었다. 염치없이 김치 리필하며 국물도 많이 달라고 했다.
말과 글로만 보고 들은 임신에 입덧이다.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도록 구역질이 나는 시기에 두 할머니의 칼국수만을 뱃속에 여린 새 생명과 나눠 먹고 싶을 때가 올 거라고 확신한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입덧이 심할 땐 롤러코스터 열 번 타고 다람쥐통에 앉아 밥을 먹는 것 같다고 했다. 내장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춤을 추는 순간 두 할머니의 칼국수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꿀꺽 넘어갈 거다.
엄마와 둘이 먹고 만 원 지폐를 내밀며 잔돈은 괜찮다고 했는데, 바깥까지 따라 나와 2000원을 쥐어주신다. 원래는 3500원이었는데 얼마 전에 값이 올랐다며. 내가 노인이 됐을 때도 두 분이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이 난다. 제주도 무김치, 열무김치도 먹으러 봄에도 여름에도 계속 가야지.
태안 파전칼국수 (충남 태안군 태안읍 시장1길 34, 시장 골목 9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