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물의 노란 기억

엄마의 손길로 물들여진 노란 원피스

by 해피마망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따뜻한 기억들은 마음 한 곳에서 자란다.

사라지지도 희미해지지도 않은 채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자라나는 기억들.

살아가면서 만나는 추운 겨울 같은 시린 시절들.

오래된 따뜻한 기억들은 추운 시절들을 떨지 않고 보낼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어릴 적, 다섯 살 즈음의 내가 무척 좋아하던 원피스가 하나 있었다.

노란색 골덴 원피스, 지금 생각하면 점퍼스커트 같은 형태였다.

골덴의 촘촘한 줄지 결을 쓰다듬으면 한쪽으로 결이 몰리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개나리 같은 노란색도 좋았다.

좋아하는 만큼 아끼는 원피스를 입다가 색이 바래면, 엄마는 커다란 스텐 대야에 치자물을 풀어 다시 물을 들여주었다.

스텐 대야 속의 조그만 치자 열매들이 열매 끝에서부터 노란색 줄기를 퍼트리며 물속에서 퍼져나가는 광경은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 마법 같은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노란색 줄기들이 대야 가득 퍼지면 엄마는 손을 휘휘 저어 물색을 고르게 하고 색이 바랜 원피스를 풍덩 담아 골고루 색이 묻도록 열심히 주물렀다.

물색이 곱게 들여진 원피스를 탈탈 털어서 햇볕이 쨍한 빨랫줄에 걸쳐 놓으면 어느새 원피스는 새 옷처럼 빳빳하게 마르곤 했다.


진하고 쨍한 새 옷 같은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엄마는,

"아휴, 우리 딸! 모델같이 예쁘기도 해라" 하며

매무새를 만져주곤 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가 된 듯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옷에는 햇살보다 더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 배어 있었다.


엄마는 부침개를 부칠 때도 치자물을 사용했다.

특히 배추 전을 부칠 때 치자물은 필수였다.

노란 반죽이 지글지글 익으며 풍기는 향은 황홀했고 점점 진하게 익어가는 노란색은 내 눈을 끌었다.

이토록 치자열매에 대한 나의 기억은 강렬한데 그것은 항상 엄마의 행복한 미소가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옷에 물을 들이지는 않지만,

가끔 빠에야를 만들 때 치자물을 낸다.

송알송알 노랗게 물든 밥알을 보면서,

행복한 미소로 치자물을 풀던

어린 날의 나와 엄마를 떠올린다.


시간은 참 많이 흘렀지만,

치자로 물들여진 나의 첫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따뜻하게 살아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지금까지 삶의 고비고비 속에서도 나를 지켜준 햇살 같은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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