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여정

성공한 낡은 신발

by 해피마망

8년 전,

신발을 하나 샀다.

스니커즈 형태의 검은색 단화였다.

낮은 신발을 잘 안 신는 나는 그럼에도

이 신발이 참으로 편하고 좋았다.

운동화처럼 끈을 맬 일도, 발이 들어갈

손가락을 집어넣을 일도 없이

그냥 쑥 들어가는 게 여간 편한 게 아니다.

오늘 신발을 세탁하기 위해 세탁실로

들고 가는데 새삼 신발의 모양새가 눈에 밟힌다.

바닥은 다 닳아서 딱히 겨울 눈길이 아니라도

반질반질한 타일이나 대리석 같은 곳을

디딜 때는 찍찍 미끄러지기도 한다.

근래에 들어서 뒤로 넘어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코 끝도 이렇게나 많이 닳았다.

한쪽이 떨어져 나가기까지 했다.

낡아진 신발의 가죽 테두리...

뒷굽도 한쪽으로 많이 닳았다.

참 오랜 세월의 흔적이 많은

내 신발이다.

이 신발을 신고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이 신발을

신고 다녔다.

내 삶의 역사 일부를 함께 해 준

나의 동반자이다.


이 신발을 신고 행복하고 기쁜 곳도 다녔지만

또 슬프고 싫은 곳도 다녔다.

인생이란 때로는 아니 더 많은 경우,

내가 꿈꾸고 소망했던 것을 성취하며

누리기보다는,

내가 원하지도 생각지도 않았던

전혀 다른 길로

나를 데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떤 유명한 이는 (아마 사르트르였던 거 같다),

"인간은 실패와 성공을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걸 가를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와 성공은 각자가 정한 목표에 도달했는가를 두고,

성공했다 실패했다를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정한 목표라는 것 자체가 그걸 이뤘을 때 반드시 성공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는 한참 젊었을 적에 나는,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하고 낙심한

사건이 한번 있었다.

당시 나는 부동산 하나를 매각하고 싶었다.

그때가 마침 IMF가 터지기 직전이었던지라

매매는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애초의 가격보다 싸게 매매가를 낮췄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바로 매각이 되었다.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처분된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분명 이것이 가장 옳고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원하고 원해서 그렇게

성공시킨 후,

석 달도 못돼서 크게 후회한 것이다.

그 후회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자책하게 했다.

그 성공에 대한 모든 것에 불만이

터졌고,

"그때 그 계약이 성공하지 않았으면 지금 훨씬 좋았을 텐데..." 후회가 됐다.

말하자면 염원하고 성공했던 일이

매우 불행하고 부당한 실패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한 것에 화가 났고

일생의 후회와 자책감을 갖게 한 나의

무지함과 양심을 신뢰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후,

인생에는 성공과 실패를 초월한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에서의 성공은 성과가 아니라,

주어진 생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관계와 시간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전적으로 자기의 문제였던 것이다.

자기를 신뢰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

그 자체로 장엄하고 아름답다운,

삶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삶,

그것은 피동적이고 마지못한 삶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가 있는 삶이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인 것이다.




오래 신어서 낡아진 신발.

내가 가는 곳을 함께 걸으며 나의 기억을

간직한 낡은 신발.


나는 이 신발을 성공한 신발이라고 부르고 싶다.

몇 번을 버리려 했지만 버리지 못하고,

다음 주에 시작할 혼자만의 여행에도

나는 또 이 신발을 신고 걸을 것이다.


착하고 충직했던 나의 신발,

나는 너를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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