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너머로 보는 세상

빛을 보는 일

by 해피마망


국민학교 4학년 봄이었다. 그날도 칠판 글씨가

흐릿해서 눈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내 쪽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 안경 써야겠다.”

그 한마디에 나는 세상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안경은 공부 잘하는 아이나 눈이 약한 아이가 쓰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나도 ‘안경 쓴 아이’가 되었다.


일요일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안경점을 찾았다. 시력검사를 하니 0.4가 나왔다.

아저씨는 얼굴보다 큰 안경알을

내 얼굴에 맞춰보며 “이게 딱 어울리네.” 하고 웃었다.

거울 속의 나는 어색했다. 코에 무거운 쇠테를 걸친

낯선 아이, 그게 나였다.


세상이 또렷해졌다. 칠판 글씨가 한 자 한 자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또렷함은 불편함을

데리고 왔다. 체육시간에는 땀 때문에 안경이

미끄러졌고, 겨울에는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뛰노는 운동장을 나는 멀찍이서

바라보곤 했다. “안경쟁이”라는 말이 익숙해질 즈음,

나는 안경 너머의 세상을 조용히 관찰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 뒤로 평생을 안경과 함께 살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안경은 내 얼굴의 일부가 되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안경알에 빛이 반사되어 눈이 지워졌지만, 그게 오히려 편했다.

눈빛을 감추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할까. 살다 보면,

보고 싶지 않은 일도 많으니까.


예순둘이 되던 해, 남편이 백내장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자고 했다.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고 따라갔다가,

실장님의 말 한마디에 나도 얼떨결에 검사대에 올랐다.

“어머님, 아직 백내장이 많이 심한편은 아니지만 시력이 꽤 나쁘시네요. 어차피 하실거면 지금하시는게 좋아요. 하시면 안경을 안쓰셔도 돼요.”


며칠 뒤 나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섰다.

“이제 안경 없이 살 수 있다니.” 수술을 마치고

처음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너무 환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그동안 안경알에 가려졌던 풍경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게 진짜 세상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빛이 번지고, 햇빛이 내리쬐면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선글라스를

쓰기 시작했다.


검은 렌즈 뒤에 숨어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멋을 부린다고 했다. 하긴 탈색한 금발에 짙은 선글라스를 썼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싶었다. “요즘은 아주세련되셨어요.” “멀리서 보면 마릴린 몬로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나이 일흔이 다

되어가는데, 마릴린 몬로라니!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젊을 때는 안경 너머로 세상을 또렷이 보려 애썼고,

지금은 선글라스 너머로 세상의 눈부심을 살짝 가리며

산다. 인생이란, 결국 ‘빛의 세기’를 조절하며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책을 읽을 때 글씨가 흐려진다.


수술한 지 몇 해가 지나자,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시 안경을 맞추러 가야 하나, 자주

생각한다. 한평생 안경을 벗고 싶어했는데, 결국 다시

안경을 찾아야 하는 나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젊을 땐 세상을 보기 위해 안경을 썼고, 나이 들어서는

세상을 덜 보기 위해 선글라스를 썼다. 이제는 글씨를

보기 위해 다시 안경을 쓴다. 그 세 가지 이유가 전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조금 더 잘 보고 싶다.’


사람도, 세상도, 나 자신도. 나는 여전히 안경을 닦는다.

그 위에 묻은 먼지는 내 삶의 흔적 같다. 닦을수록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명해지는 기억들.

안경을 쓰고 살아온 세월이 내 시력을 닮았다.


빛을 보는 일은, 언제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천천히, 안경을 닦듯 마음을 닦는다.

상이 너무 눈부셔 잠시 눈을 감아도,

내 안의 시선만은 흐려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작가의 이전글수요일은 선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