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훈련의 후기를 남기며
어느덧 전지훈련을 다녀온 지도 한 달이 지났다. 큰 아이 한 명만 챙겨 꽤나 여유가 있었던 1월과 달리 둘째 아이가 돌아오면서 이전보다 더 버겁게 느껴진 육아와 집안일로 브런치는 잠시 잊었다. 지금도 여전히 피곤에 절어 헤르페스와 끊임없는 동거를 하고 있지만, 새 학기 등교와 동시에 틈만 나면 노트북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이 시간이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켜는 것만큼이나 나에게는 힐링이다.
30일간의 긴 시간 동안 훈련을 하고 오면 어떨까? 정말 눈에 띄게 실력적으로 많이 성장했을까? 많이들 궁금할 것 같다. 복귀 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김이 많이 샌 느낌이지만, 지금이라도 짧게나마 첫 야구 전지훈련의 후기를 남겨본다. 그런데 이 후기를 한 달 전에, 아이가 돌아온 직후에 썼더라면 아마도 놓치는 부분이 있었을 듯하다. 결과적으로 어영부영 흘려보냈을지도 모를 겨울방학 동안 아이가 좋아하는 야구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은 여러 가지로 가치가 있었음을 남기고 싶다. 수학진도를 빼고, 심화공부를 시키고 싶었던 아주 중요한(^^) 5학년 겨울방학임을 감안한다면 학군지 엄마로서는 꽤 큰 결심이었음을, 후에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선행학습이 아닌 운동을 시킨 것에 절대 후회하고 있지 않기를.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할 만큼 아무것도 없던 아이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먼저, 일상생활에서 아이는 나름대로 루틴을 잡아가고 있다. 본격적인 운동 전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 일지를 쓰며 매일매일 그날의 훈련을 되돌아보는 것. 내가 가장 바랐던 바였는데 한 달의 시간 동안 행해져 온 것들이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베어 온 것 같다.
둘째, 먹는 양이 늘었다. 물론 먹는 횟수만큼 화장실을 가는 것은 여전하지만, 게다가 천천히 먹는 것도 변함없지만 챙겨주는 것은 남김없이 먹으려 애쓴다. 이제는 40kg를 안정적으로 넘어 42kg 달성, 나도 모르게 45kg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많은 훈련량에 매끼 형들과 함께 식사를 한 덕택이리라. 또한, 살을 찌우기 위해 먹는 것이 훈련의 일종으로, 이것 또한 열심히 노력하는 형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컸으리라.
셋째, 실력은 계속 성장 중이다. 전지훈련기간 동안 많이 배우고 익힌 것이 복귀 후 훈련을 하면서 좀 더 안정적이고 원만한 모습을 보인다. 훈련 기간 동안 아이의 성실도에 대한 평가가 좋았는데, 그 기간 동안 아이가 진심으로 열심히 훈련에 임한 결과가 돌아온 지금도 실력을 비롯해 자신감 형성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매일 확인하고 있다.
넷째, 나와 아이와의 관계가 매우 좋아졌다. 나는 아이에게 원 없이 야구할 시간을 제공했고, 아이는 원 없이 야구를 하고 왔다. 부모의 지원으로 아이는 소원성취한 셈이고, 실제로 아이는 스트레스 없이 돌아왔고 나 역시 스트레스 없는 아이를 보는 눈빛이 양껏 여유로워졌다. 아이와의 대화는 하루하루 더 즐거워졌고, 아이에게 스스로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해도 강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공부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줄었고, 물론 나의 성에 차진 않지만 공부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어 보인다. 아이에게 공부는 그다지 재미없는 일일뿐 하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 수업에서도 집중도가 높아져 수업을 즐겁게 듣고 오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운동과 공부와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어쨌든 이게 꿈인지 생신지, 하루가 멀다 하고 숙제와의 전쟁을 치렀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유토피아가 따로 없는 듯.
이렇듯 나에게 전지훈련은 단순히 결과만을 놓고 값진 시간이었겠구나 하는 긍정의 평가로 마무리할 수 있지만, 아이는 거의 30일 내내 근육통을 달고 살 정도로 훈련이 힘들었다고 했다. 안쓰러운 마음은 뒤로 하고, 나는 이때다 하고 지체할 새 없이 아이에게 물었다. “앞으로는 이 훈련보다 더 힘든 날이 많을 텐데, 그래도 야구할 거야?” 지금도 아이가 언제든지 ‘야구 그만하고 싶다’하면 누구보다 재빠르게 정리할 자신이 있는 나다. 그러나 아이는 어김없이 “그래도 할래.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졌어. 재밌잖아."
기운이 쫙 빠진다.
2026 WBC가 한창이다. 8강 진출을 위한 호주와의 경기를 보면서 스포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예전에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느냐 지느냐의 결과에만 연연했다. 이기면 기뻐 날뛰고, 지면 아쉬움이 가득한 노여움을 뿜어내면서 말이다. 호주전에서 상대방의 실책으로 우리는 승리에 기뻐했지만, 실책한 그 호주선수는 얼마나 자책했을지, 언젠가 내 아이가 그 자리에서 비슷한 실수를 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나도 모르게 종종 감정이입이 되고 있다. 어찌 됐건 그 선수의 실책은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었고, 그의 팀과 자신에게는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의 치욕적인 순간을 남겼다. 반드시 모든 경기에서 이기는 팀이 있으면 지는 팀이 있게 마련. 스포츠라는 것이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줌으로써 내적 성장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이번 대회를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일상복귀. 이제 다시 돌아온 루틴 속에서 앞만 보며 달려가 본다. 오늘도 언제가 끝일지 모를 아이의 앞날을 위해 나는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