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혼자가 편해진 것이 아니라, 덜 아프기 위해서다.

당신의 마음은 다시 살아납니다.

by 신정희 해피제이

어느 순간부터

혼자가 편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약속이 취소되면 안도하고,

주말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크게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이 말을 할 때 사람들은 종종 덧붙인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요!”


마치 혼자를 선택한 자신이

조금 이상해진 것처럼.

하지만 심리학은

이 변화를

성격의 변질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해석한다.
고독이 편해진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받는 자극이

아파졌기 때문이라고.


사람과의 관계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강한 자극이 되기도 한다.
표정을 읽어야 하고,

기대를 조율해야 하고,

말과 말 사이의 온도를

계속 감지해야 한다.


이 과정은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감당되지만,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는

통증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은

자극이 적은 쪽을 선택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움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극을 줄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조절(self-regulation)

한 형태로 본다.
사람은 스스로를 안정시키기 위해

환경을 선택한다.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을,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한 곳을,

사람 많은 자리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이 선택은

사람을 피해서가 아니라,

신경계를 진정시키기 위한 반응이다.

그래서 혼자가 편해진 시기에는

혼자 있는 동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기대를

관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선택을 스스로 오해할 때 생긴다.

“나는 사회성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이러다 진짜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혼자의 시간을

회복의 공간이 아니라

불안의 증거로 바꿔버린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혼자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의

완충 구간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외로움보다

안정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 안정감이

마음의 바닥을 다시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혼자를 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직은 아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혼자를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는 일이다.
당신이 혼자가 된 것은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덜 아픈 방식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혼자는 더 이상 부끄러운 상태가 아니다.
그저 하나의 단계가 된다.


그리고 단계는 영원하지 않다.
회복이 진행되면

사람은 다시

관계에 대한 감각을 회복한다.
그때의 관계는

예전처럼

무리해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

그래서 혼자의 시간은

관계의 반대편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가능하게 만드는

중간 지점일 수 있다.


지금 혼자가 편한 당신은

관계를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해

잠시 멈춰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혼자가 편해진 것은

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덜 아픈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혼자가 편해진 게 아니다.

상처받지 않는 방식이

혼자였을 뿐이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