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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K Jan 08. 2022

나는 예술치료사이다.

나의 많은 아이덴티티 중 가장 듣고 싶은 호칭


나는 나의 이름 이외에 평생 다양한 호칭과 위치,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다. 최조로 내가 가졌던 호칭은 우리 엄마 아빠의 '딸' 이자 언니의 '동생'이었다. 그리고 태어난 지 1년 남짓 겨우 몸이나 가눌 나이에는 갑자기 '누나'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다. 물론 중요한 원가족 간의 호칭 외에도 '손녀', '조카', '친구 딸' 등등 내가 인식하지 못한 다양한 호칭들이 존재했겠지만 일단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로만 생각해보려 한다.


 호칭에 따라 나의 역할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호칭에는 나의 의지나 관심사와 상관없는 다양한 역할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그나마 학창 시절에는 심플했다. '학생' 그저 시키는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지각하지 않고, 시험 잘 보고... 이 정도면 '학생'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 몹시 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 다만 책은 참 좋아했던 학생이었다. 왠지 지긋지긋했던 기억 때문에 그 이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했는데 자꾸 '학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10대 시절에 느꼈던 제약은 없지만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이 늘어난 '40대 학생'


물론 40대의 나에게 주어진 호칭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가정에서는 '딸, 동생, 누나'였던 원가족의 (형제들이 결혼하며 처제, 시누이가 되기도 했다) 호칭과 함께 신가족에게서는  '엄마', '아내', '며느리', '주부', '올케', '학부형' 등의 더 많은 역할이 더해졌다. 가끔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책임감과 의무들이 버겁고 가끔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기꺼이...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 일들과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이 공존하며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보내고 있다.


일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활동하는 영역을 달랐지만 대부분 '선생님' 최근의 몇 년간 아이들에게는 '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요즘은 회사 다니면서 '임상심리사' 혹은 '과장' , '상담사'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이 외에도 무수하게 많은 호칭과 역할들이 있지만 일일이 생각하고 쓰다 보면 끝이 없어서 생략. 


자신의 페르소나를 찾아가는 과정


최근 불리는 다양한 호칭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호칭은 '예술치료사'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상담에 들어가도 과정과 결과가 늘 다르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도 다르다. 따라서 매 회기마다 설레고 긴장되는 시간들이다.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는 느슨함을 느끼는 순간 돌발 상황이 벌어지며 정신이 번쩍 들어오게 만든다. 다행스럽게도 MBTI  성격 유형 중 ENTP인 나는 늘 새로운 에너지를 주고받고 서로 다양한 통찰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순간들을 즐기는 편이다.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은 이 말씀을 자주 하신다.'내가 고른 이미지 혹은 생각 없이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작품이 나에게 말을 건다, 작품이 건네는 나의 내면이 보내는 메시지를 잊지 말고 잘 간직하고 생각하다 보면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내가 보인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간단하다. '그 매체를 선택하고 그렇게 표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절대로 들키지 않겠다고 혹은 알긴 뭘 아느냐 라는 마음으로 치료실에 들어온 내담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표현한 다양한 작품을 보며 스스로 통찰을 얻어간다. 치료사는 답을 찾아가는 것을 거들뿐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혹시 답을 찾지 않더라도 생각해보았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최근 내가 생각하는 상담, 심리치료라는 과정과 매우 일치한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찾아가는 과정


최근에는 기존의 딱딱하고 권위적이던 치료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개인 혹은 가족의 전문가는 '자기 자신'임을 강조한다.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하였더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즐기게 되며 점점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커지고 다양해지며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함께 하다 보면 진행하는 나 역시도 뭉클하고 울컥하는 기분을 자주 느낀다. 


최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맡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치료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적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회사 내에서 불리는 '임상심리사'나 '과장님'의 직함보다는 '상담 선생님' 혹은 '예술치료사'라는 표현에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것이 느껴진다. 현재 내가 가진 페르소나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만... 곧 내가 가장 설레는 일을 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그 과정에 대해 기록하고 싶어 수년 만에 다시 브런치에 글을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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