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아픈 손가락 막내가 홀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막내가 수능을 치고 나면 우리는 셋이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었다. 우리 사전에 재수는 없으므로 막내의 수능은 곧 입시 지옥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지난한 입시의 터널에서 탈출하는 기념 여행인 셈이다. 아이들이 입시를 치르고 나면 남편은 ‘고생했다’라며 나에게 명품 가방을 사주었다. 아이들은 ‘시험은 우리가 쳤는데 선물은 왜 엄마가 받느냐’고 억울해했다. 특히 첫째는 사교육 없이 오로지 공교육, 나의 정보력 그리고 아이의 노력만으로 준비해서 치른 입시다. 적성, 취업 등을 고려한 진로 선택과 원서 영역에서는 남편의 도움도 물론 컸었다. 둘째와 막내도 사교육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만큼 가성비 좋은 아이들도 드물 것’이라고 한다. 약속한 여행은 남편의 부재로 가지 못했다. 그 여행을 막내는 전역 후 복학 전에 혼자 간 것이다.
새해 첫날 아침이었다. 막내가 일어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아빠가 들어가 간지럼을 태우면 침대에서 부자가 장난을 치다가 웃으면서 함께 나온다. 그날은 짜증을 내면서 밖에서 아이를 깨웠다. 아빠의 짜증에 아이도 잔뜩 부은 얼굴로 나와 욕실로 들어갔다. ‘10분 만에 하고 나와!’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아이는 방문을 ‘꽝’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갔다. 시아버지가 오시고 차례를 지내는 내내 막내는 표정이 뚱하다. 세배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고 밥을 먹는 중에도 막내는 말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버님은 가시고 막내는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남편은 막내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고성이 오가더니 남편이 막내의 뺨을 때렸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이 기막힌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미쳤어? 올해 고3인 아이에게 정월 초하루부터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막내의 잘못은 깡그리 잊은 채 마치 남편 때문에 아이의 입시를 망치기라도 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녁에는 시댁에 올라가 시누이 가족들과 다 같이 식사를 한다. 남편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도 화가 풀리지 않아 ‘마음대로 하라.’하고 우리끼리 시댁으로 갔다.
“오빠는?”
“몰라, 이혼할 거야.”
시누이가 피식하고 웃는다.
“그놈의 이혼 언제 할 건데?”
“걱정하지 마! 꼭 해. ** 대학 가면 할 거야.”
막내가 잘못한 건 쏙 빼고 뺨 때린 얘기만 했다. ‘미친 거 아니야? 근데 믿을 수가 없네. 오빠가 **를 때렸다고? 그것도 뺨을? 마귀가 씌었네. 제사 지내지 말라니까.’ 시누이 셋은 제사를 없애야 한다고 나를 채근했다. 하지만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그날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Knock on Wood'를 하며 바로 화해했고 며칠 후 막내는 남편에게 용서를 구했다. 남편은 지켜보겠다는 말로 용서를 대신하고 때려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남편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지금 생각해도 남편의 그날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 친정엄마는 ‘그 어진 이 서방이 제가 갈 줄 알고 정을 떼려고 그리 했나 보다.’라고 한다. 마귀 씌었다는 말과 함께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여행을 즐기며 연신 사진을 보내온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으니, 서양의 주술적 행동인 ‘Knock on Wood (나무를 두드리면 행운은 불러오고 액은 물리친다는 서양의 미신이다)’하라며 막내에게 나도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주문을 한다.
Knock on Wood, Knock Knock Knock!!
*이미지 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