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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Sep 04. 2020

1. 유쾌하지만은 않은 내 안의 반란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낯선 나라 중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중국 땅을 밟고 난 후의 첫 목표는 ‘적응’이었습니다.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중국에서의 6년간의 생활을 뒤로한 채 귀국하게 되었을 때, 또 다시 나의 목표는 다시 6년 전과 같은 ‘적응’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 삶의 가장 익숙했던 곳, 내 나라 나의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곳에서 적응이라는 것이 필요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엄마가 되어 돌아온 나에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주변 환경은 많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귀국 후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입학시키며 혹여나 오랜 해외 생활로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거기에 더해지는 경제적 압박, 외벌이로는 교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자 더 이상 전업주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새로운 직업을 향해 도전을 해야만 했습니다. 중국에서 적응하기 위해 공부한 중국어를 발판으로 강사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 도전해야 했지만 저는 절박했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저녁시간이면 중국어 관련 학위를 위한 사이버대학교 수업을 듣고 리포트를 작성하고 출강을 위한 교구제작. 강사라는 직업에 도전하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밤을 새워 수업준비를 하며 보낸 3년, 그 시간을 다시 되돌아보니 많이 애쓰며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고 노력하며 강사로 활동하던 시간은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고 성취감도 컸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흘러 찾아오는 익숙함이라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강사로서 3년을 보내고 나니, 바쁘고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짬짬이 찾아오는 안도감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강사라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어느 날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 찾아온 낯선 손님. 헛헛함과 답답함. 프리랜서 강사의 일은 자유롭기도 했지만 마음 한쪽에는 불안감이 늘 있었습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삶이라 항상 다음해를 생각해야 했고, 11,12월이 되면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반복적으로 예민해졌습니다. 그때는 계약에 대한 불안감인지도 알아채지 못했어요.


일과 생활이 모두 흔들흔들 불안감에 휩싸여도 이런 제 상황을 공유하고 발전적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은 그저 프리랜서라 자유롭겠다고 하고,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 싶어서, 동생들에게는 든든한 언니로 남고 싶어서 나의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같은 분야에 계신 분들과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일로 만난 사람들과 서로를 깊게 공감하고 나누는 관계로 발전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나에게 찾아온 감정들의 정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야속하게도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제가 겪고 있는 이상하고도 힘든 감정을 그 누구도 정의 내려 주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정말 몰라서 말을 못해준 걸까요? 이런 감정을 가까운 이들에게 살짝 꺼내어보려고 하면 “다 그러고 살아, 너만 왜 유난스럽게 구니?” 라는 답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강한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나의 감정은 바쁠 때에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 꼭꼭 숨어 있다가 잠시라도 생각할 여유가 생기면, 특히 고요한 밤 시간에 꼭 다시 찾아와서 저를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게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감정의 폭풍에 일상은 늘 피곤함에 찌들었고,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피곤함은 짜증으로 바뀌어 나를 향했던 뾰족한 송곳을 아이들을 향해 겨누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엄마 또, 한편으로는 남편의 지지를 받는 좋은 아내가 되고 싶었죠. 엉망이 된 것만 같은 나의 삶, 그리고 커리어도 다시 잘 쌓아나가고 싶었습니다.


귀국 후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잘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하게 보통사람으로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고 비춰지던 나의 삶의 도화지는 정작 나에게는 아주 까만색 크레파스로 가득 칠해진 것만 같았습니다.   

  

1년, 2년…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를 안고 시간이 흘러만 갔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었을까요? 그 즈음 중국어 강의 연구 때문에 찾아보던 유튜브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어느 유튜버가 추천해준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삶의 변화에 대해 꿈꾸게 되었습니다.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빨간 표지의 책을 만났습니다.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삶을 변화시켰다는 전안나 작가의 책 《1천권 독서법》이었습니다.

저자는 “100권을 읽고 마음이 안정됨을 느꼈고, 300권 쯤 읽은 뒤에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으며, 500권을 읽고부터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차올랐다. 결정적 변화는 800권 독서를 기점으로 찾아왔다. 800권의 책을 읽자 작가가 되어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내 마음과 생활에 깃들어 있는 막막함의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책속에 저자가 이룬 변화를 나도 이루고 싶은 마음, 희망이 생겼습니다.    

  

한 해 동안 읽은 책의 수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을 읽지 않았던 저는 쉬운 책, 재미있는 책, 읽고 싶은 책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죠. 어려운 책은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책에 관심을 갖게 되자 도서관마다 개설되는 책과 관련된 강의들이 궁금해졌고, 찾아가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책은 저를 새로운 공간으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매개로 모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강사님을 통해 책을 추천받기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계독서를 하게 되면서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겨났습니다. 시간을 쪼개 책을 읽었지만 읽기만 하는 것으로는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용과 실행이라는 숙제가 생겼습니다.


책과 함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나의 변화에 대해 긍정으로 대하지 않는 주변에서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에 동의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던 변화의 바람이 온라인 안에서는 가득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모임과 온라인 프로젝트들이 있었고, 온라인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이 확장되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뭐지? 이미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나는 몰랐구나.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나도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다. 이런 공허하고 헛헛한 마음들을 나 스스로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라는 마음이 뜨겁게 올라왔습니다.   

  

나의 변화를 실현시켜줄 도구로 한쪽은 책읽기로 또 다른 방향은 실행을 위한 모임참여로 결정했습니다. 꾸준히 책을 읽고, 때때로 독서모임을 찾아 참석했습니다. 독서지도 강사님이 운영하시는 나비모임에도 참여하며 책읽기를 이어갑니다.      


변화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요?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변화와 성장의 여정을 함께하는 만남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활동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 또다시 망설여졌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저는 또다시 움츠러들었습니다.


저와 결이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내 생각과 상황을 이해해주고 함께 성장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30대 후반에서야 결심한 변화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동안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블로그를 통해 연결되는 사람들을 통한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참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모임이 좋은 모임일까? 이 모임에서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이 모임에 참석하면 무엇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나를 찾아가는 길’, ‘다시, 시작’을 이야기하는 모임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 모임들은 단순히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것도 성공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도 아닌, 나를 이해하고 나를 찾아가는 길, 이제와는 다른 변화된 삶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모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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