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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Sep 20. 2020

여보 나 할말이 있어.

주재원 아내로 사는 삶 01

"여보, 나 할말이 있어...."

말끝을 흐리는 남편의 말소리 그가 꺼내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것 같다.

남편은 일년전 큰아이 돌잔치 후  3개월이면 된다는 말과 함께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 

혼자 아이를 돌보며 워킹맘으로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것 같아서 남편이 떠나기 전 살던 집을 정리하고 시댁에 아이와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 

시댁에서 살아가야 할 막막함에 괜찮을까? 를 수도 없이 되뇌이면서도, 

내 마음을 위로하며  '3개월이면 되는데 뭘...' 하며 수없이 다독였다

남편 없는 시댁에서 시어른들과 함께 매일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시어른들은 아이도 돌봐주셨고, 나에게 불편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으셨지만,나는 왠지 모르게 불편했고,

주말에는 큰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향했다. 


3개월이면 된다던 남편의 출장은 6개월로, 또 다시 1년으로 기간이 연장되었다. 

그 와중에 둘째 아이가 임신이 되었고 남편없이 큰아이를 키우는 것도 모자라 나는 둘째 아이 까지 책임져야했다.  임신 내내 먹고 싶은 것도 쉬이 드러내지 못하고 임신기간을 보냈다. 

신생부서의 업무가 벅차다 느끼던 그 때 조기진통으로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되었다. 

1달간 입원해 있을때도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의 출산일이 임박해서야 겨우 남편은 출장을 마치고 귀국할 수 있었다. 

귀국 후 남편이 처음 꺼낸 말  "여보, 나 할 말이 있어...."

누구라도 남편이 하려는 말을 눈치 챌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설마 하며 상상하던 이야기를 남편이 이야기 한다. 

"주재원으로 나가야 할것 같아...."

결혼 전 유학을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해외에서 사는 것은 어떨까? 하며 막연히 생각했던적이 있었다. 

자유롭게 공원을 걷고,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해외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

하지만 지금은 상상을 하던 때와 나의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2살 큰아이와 뱃속 아이의 엄마.. 너무 어린 아이들의 엄마이자 중국어는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나.

해외에서 살 수 있다는 그 말이 전혀 반갑지 않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한번도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중국이라는 나라라니... 

주위 사람들은 우리의 소식을 듣자마자 하나같이 놀라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중국 엄청 위험한 나라 아니야? 거기서 애도 어린데 어떻게 살아?"

"안가면 안되는거냐? 아이도 어린데 거기서 살 수 있겠어?"

사람들의 이야기 속 중국이라는 나라는 엄청나게 무서운 곳이고,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영화나 매체에서 그려지는 중국도 긍정적 이미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 당시 주재원으로 가지 않으려면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나도 남편도 두려웠을까? 

나는 남편에게 "가자, 안가면 그만둬야 한다는데.... 거기도 사람사는 곳인데 어떻게든 살겠지..."하며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달래고 달래며 이야기 했다. 

두려웠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초보 엄마라는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나의 대답으로 일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중국으로 가게되었다. 

둘째 아이 출산 후 국제 이사를 마친 남편은 먼저 출국했고, 나는 2달 산후 조리 후 둘째아이 80일째 되던 날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고, 깊게 생각할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어쩌면, 워킹맘으로 살아가야하는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를 내려 놓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 삶이 무거워 선택했던 중국행은 이곳에서 워킹맘으로 사는 것 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삶이 나를 성장하게 했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다. 

무엇이든 혼자 해내야했고, 부딪히며 온 몸으로 경험해야했다. 

그때는 힘들고 어려운 경험이었지만 이제는 그 경험이 나의 중심이 되어 또 다른 삶들을 만들어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나는 그저 삶을 살아 낸 것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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