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화요일부터 냉동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이 꽁꽁 얼어야 하는데 만져보면 물컹물컹 거리는 것이었죠. 다행히 카페에는 테이블 냉장, 냉동고와 별도로 100리터 짜리 작은 냉동고가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쓰고 있었습니다.
냉동고에 성애와 얼음이 너무 많이 있어서 온도가 안 내려간다고 판단해서 냉동고 벽면에 붙은 얼음을 칼로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 정도 작업을 해서 테이블 냉동고 벽면에 붙은 얼음을 다 뜯어내 버렸죠. 이왕 시작한 거 100리터짜리 냉동고에 있는 성애 얼음도 제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커다란 식칼을 들고 얼음과 냉동고 벽 사이에 넣고 망치로 딱하고 치는 순간 ‘푸슉’하는 소리와 함께 ‘치이익’하는 가스가 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냉동고 벽면 안쪽에 있는 냉매 가스관까지 칼이 들어간 것이지요. 사실 냉동고에 있는 얼음을 녹일 때는 식칼로 쳐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서 없어지도록 전원을 꺼두거나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물청소를 해야 합니다. 조금의 시간을 아끼려고 칼로 얼음을 제거하다가 일이 나버리고 만 것이죠. 그 나오는 가스를 막아보겠다는 얕은 생각으로 실리콘으로 그 자리를 막아 보았습니다만…. 역시나 역부족이었습니다. 냉동고의 생명은 그 시간부로 끝나 버린 것이죠.
저는 기계 쪽으로는 영 재주가 없는 모양입니다. 뭐만 만지면 고장이 나버리니까요. 카페를 하면서 마음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이렇게 기물이나 기계가 고장 나버리는 경우입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잠들기 전까지 ‘왜 하필 거기를 칼로 찍었을까? 그냥 놔두고 쓸걸…. 아…. 테이블 냉동고도 고장 났으면 어쩌지? 내일 그 자리에 딱 맞는 냉동고를 구할 수 있을까?’ 등등 많은 자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한 남자가 주택을 보수하는 현장에 고용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첫날부터 많은 문제를 겪었습니다. 나무에 박힌 못을 밟아 발을 다쳤고, 전기톱은 고장이 나서 시간이 지체되었죠. 그리고 그가 몰고 온 낡은 트럭은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 그를 고용한 사장이 그를 집으로 태워다 주는 동안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자는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남자는 가족들을 인사시키기 위해 사장을 잠시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남자는 집 앞에 있는 작은 나무 옆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두 손으로 나뭇가지 끝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현관문을 열 때 그 남자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밝은 미소로 달려오는 두 아이를 껴안고 아내에게는 입맞춤을 했습니다.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나무 앞을 지나가면서 호기심을 느낀 사장은 남자에게 좀 전의 행동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말했습니다.
“아, 이 나무는 걱정을 걸어 두는 나무입니다. 일하면서 문제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을 집 안의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데리고 들어갈 순 없습니다.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기 전에 문제는 이 나무에 걸어두는 것이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그 문제를 가지고 일터로 갑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문제들이 밤사이 바람에 날아갔는지 많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 이야기의 현명한 남자처럼 문제는 집 안에 들어오기 전에 걸어두고 와야 했는데 저는 그게 잘 안됩니다. 마음에 대해 공부를 하고, 걱정을 없애는 방법들을 훈련하면서도 막상 상황이 발생하면 그것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일하기가 싫어지는 것이죠.
제가 아는 한 작가님이 카페에 놀러와서 10분 만에 깊게 잠드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습니다. 이 작가님은 평소에 걱정과 잡념이 많아서 늘 잠들기까지가 너무 오래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자기 전에 침대에 앉아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쪽지에 적었다고 합니다. 각종 걱정, 염려, 잡념 등등을 말이죠. 그것을 적은 쪽지는 동글동글 꾸겨서 침대 옆에 있는 작은 상자에 넣어둔다고 합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생각이 없어지고 잠이 온다는 것이죠. 일주일이 지난 후에 그 상자에 있는 종이들을 다시 꺼내서 본다고 합니다. 일주일만 지나도 대부분 불필요한 걱정이었거나 해결되어 있는 일들, 혹은 일주일 만에 잊어버릴만큼 사소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흙탕물을 맑게 만드는 방법은 가만히 놔두는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은 마치 흙탕물과 같죠. 걱정이 생겨서 그 걱정을 없애려고 하면 더 뿌옇게 되는 것이 걱정의 속성 중 하나입니다. 카페를 경영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합니다. 머신이 갑자기 멈추기도 하고, 하수관이 막히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죠.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걱정이나 분노에 파묻히치지 않고 하나씩 일을 해결해나가는 것이죠. 하나의 문제 속에는 하나의 배움이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걱정이 들거나 잡념이 들 때면 그 걱정이나 잡념 속에 빠지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가서 가만히 그 생각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감정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가만히 인사를 건네보는 것입니다.
“안녕, 걱정. 오랜만이야.”
모든 감정은 손님이고, 우리는 어떤 감정보다 큰 존재니까 말이죠. 냉동고 덕분에 마음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