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운영하며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일 자체가 소꿉놀이 같다는 것입니다. 손님들은 카페에 와서 녹색 종이를 줍니다. 그것을 받은 뒤 컵에 얼음과 물을 담고, 에스프레소를 넣어주죠. 그렇게 받은 녹색 종이를 가지고 퇴근 후 고깃집에 갑니다. 고깃집 사장님도 열심히 고깃집 소꿉놀이 중이죠. 사장님에게 녹색 종이를 주면 고기를 가져다줍니다. 어렸을 적에 했던 소꿉놀이는 장난감 집과 장난감 컵에 무엇인가를 담아서 팔았다면, 이렇게 보면 어른이 된 후 소꿉놀이는 조금 더 커다란 집과 진짜 컵에 무엇인가를 담아서 팔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저자 바딤 젤란드는 모든 직업의 본질이 모두 ‘놀이’에 있다고 말합니다. 놀이라고 볼 수 없는 직업은 없다는 것이 바딤 젤란드의 의견이죠. 어른들이 대범한 척하면서 뽐내는 투로 아이들이 하는 ‘일’을 ‘놀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는 ‘일’이라고 부르는 것에 중요성을 부여해놓고 그것을 가지고 ‘놀고 있다’고 말합니다. 놀이는 진지한 ‘일’이며, 일은 진지한 ‘놀이’라는 것이죠.
우리 가족은 가끔 보드게임을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 부루마블을 했습니다. 스타트 지점에 각자의 말을 두고 초기 자금을 받았습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주사위를 던지면서 ‘놀이’가 시작되었죠.
부루마블은 실력보다 운이 승패를 좌우하는 게임입니다. 첫째 딸은 땅도 사고, 건물도 많이 샀습니다. 반면 둘째 딸은 계속 돈을 잃었죠. 게임 중반전쯤 되었을 때 둘째는 거의 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첫째 딸은 신이 나서 환호하고 춤까지 추면서 게임을 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아이들과 게임을 할 때는 미묘하게 져주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입니다. 특히 꼴찌는 아빠의 몫이어야 하죠. 둘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시점에서 다행히(?) 아빠인 제가 파산을 하면서 게임을 급히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을 정리하면서 첫째 딸은 자기가 얼마나 부자인지 자랑을 했습니다. 둘째 딸은 분한지 다른 놀이를 하자고 했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우리의 ‘생’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루마블 게임을 하면서 우리는 땅도 사고, 건물도 사고, 돈도 법니다. 혹은 땅도 잃고, 건물도 잃고, 돈을 잃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들은 그 게임 속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 같은 경우 부루마블에서 돈을 벌면 진짜 기뻐하고, 돈을 잃으면 정말로 속상해합니다. 마치 그게 진짜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이 게임임을 압니다. 그것을 알기에 그 안에서 즐길 수는 있지만 그렇게 큰 의미는 두지 않습니다. 그저 같이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를 즐길 뿐이죠.
우리가 사는 이 ‘생’도 마치 부루마블 같은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살면서 돈도 벌고, 땅도 사고, 건물도 사기도 합니다. 혹은 돈도 잃고, 땅도 잃고, 건물을 잃기도 하죠.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라고 자랑을 하기도 하고, 돈이 없어 가난하다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놀이와 인생은 비슷한 점이 많지 않나요. ‘생’이라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잠깐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상황을 보면 부루마블 게임이나 지금 사는 삶이나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옛날부터 많은 스승이 말했습니다. 인생은 마치 꿈과 같다고 말이죠. 물론 우리가 사는 이 ‘생’이 한낱 꿈이며,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극단적 허무주의로 가기에는 우리의 생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 ‘생’은 하나의 ‘놀이’이며, 그것을 인식하고 그저 즐겨보자는 것입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가끔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가장 주된 이유는 우리가 어떤 것에 ‘중요성’을 너무 많이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잠재의식, 명상, 그리고 여러 가지 종교에서 동일하게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볍게 살기’입니다. ‘내려놓음’ ‘비움’ ‘섭리에 따라 살기’ 등등 모두가 가볍게 살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중요도가 높아질수록 그 일은 놀이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중요도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눈앞에 폭 60cm 길이 3m짜리 판자가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판자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가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마 손쉽게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절벽 끝에 걸쳐두고 걸어가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 순간 그 판자를 걸어가는 일은 중요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판자를 위를 걷는 일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과는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죠. 보기만 해도 두려움이 몰려올 것입니다. 바닥에 둔 판자와 절벽 위의 판자. 정말로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요?
장사 혹은 사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를 잘 생각해봅시다. 스트레스는 크게 2가지의 원인에서 발생합니다. 첫 번째는 시스템, 두 번째는 마음에서부터입니다. 시스템에서 발생 되는 문제들은 일하는 방식을 바꿔주면 됩니다. 빙수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현재 우리 카페에서 빙수는 빙수 눈꽃은 큰 그릇에, 빙수 토핑은 작은 그릇에 따로 나갑니다. 처음에는 눈꽃 위에 토핑을 올렸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빙수 주문이 여러 개가 들어 오면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려졌습니다. 눈꽃을 그릇에 담은 다음 눈꽃빙수 머신을 멈춘다음에 거기에 토핑을 올려서 완성해야 되기 때문이죠. 빙수 주문은 밀리는데, 음료까지 계속 들어오니 일을 하는 바리스타들이 거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눈꽃은 따로 큰 그릇에 담고, 토핑은 작은 그릇에 따로 담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따로 담으니 빙수 주문이 많이 들어와도 전만큼 주문이 밀리지는 않았죠. 이렇게 시스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면 해결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스트레스는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3명이 들어와서 배가 부르다고 1잔을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정말 있는가요? 어차피 1명이 앉아서 1잔을 시킨 든, 3명이 앉아서 1잔을 주문하든 테이블을 1개를 쓰는 것은 동일합니다. 어떤 카페에서는 1인 1주문을 ‘룰’로 정해서 운영합니다. 1인 1주문이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그 카페의 운영방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과연 그 운영방침을 따라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과연 그 룰은 누가 정한 것일까요? 무엇보다 남들이 정해놓은 룰을 따라가면서 내가 기분 나쁠 이유가 있을까요?
카페 운영을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바라보고 있다면 조금 힘을 빼보는 것은 어떨까요? 굳이 판자를 절벽 위에 걸쳐둘 이유가 없습니다. 카페가 잘 되든, 혹은 잘 안 되든 하나의 놀이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커피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분을 떠올려봅시다. 그 기분으로 오늘 하루 카페의 문을 열어보면 어떨까요? 가볍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