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케어', 비극의 동의어에서 희망의 열쇠로

by 미금행복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첨단 기술과 한류로 빛나는 대한민국. 그러나 그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라는 참담한 자화상이 숨어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38.2%로, OECD 평균(14.2%)의 세 배에 육박하며 압도적인 1위다. 노인 자살률 역시 80세 이상의 경우 10만 명당 67.4명으로 OECD 평균(21.5명)의 3.1배에 달한다.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사회적 가치를 잃었다고 느끼는 노년의 고립감은 이 비극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는 이미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의 문턱을 넘었으며, 줄어드는 생산가능인구를 생각할 때 노년층의 경제활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가난하고 외로운 노년'과 '활력 잃은 국가 경제'라는 두 난제 앞에, 우리는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노노케어(老老 care)’, 즉 건강한 노인이 다른 노인을 돌보는 시스템에 있을지 모른다. 이는 단순히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 노년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고도의 의료 기술이 필요한 전문 간병이 아니라면, 다정한 말벗이 되어주고 식사를 챙기며 기본적인 가사를 돕는 일은 수십 년의 살림 경험을 가진 노년층이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격동의 현대사를 함께 통과하며 쌓아온 비슷한 경험과 정서는 그 어떤 젊은 세대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는 단순한 돌봄을 넘어 정서적 지지와 상호 존중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이 된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액티브 에이징(Active Aging)’ 관점에서 보면, 노노케어는 은퇴 후 무력감과 사회적 고립에 빠지기 쉬운 노년층에게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며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노케어'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어둡고 슬픈 그림자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어느새 '노인이 노인을 돌봐서 불행하다'는 비극적 서사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 강원도 춘천에서는 위암에 걸린 아내와 우울증을 앓던 남편이 병세를 비관하여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돌봄의 무게가 온전히 개인과 가족에게만 떠넘겨졌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퇴직자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3년째 돌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토로한다. 분명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는 '노노케어'는 왜 우리 사회에서는 절망과 동의어가 되었을까?


문제의 핵심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인색함에 있다. 바로 요양보호사의 처참한 처우와 급여 문제다.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문 요양보호사의 월평균 수입은 고작 87만 원, 시설 요양보호사 역시 206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17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라는 현장의 절규는 이 문제가 개인 사업장의 일탈이 아닌,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가 체계 자체에 깊이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또한 노인을 돌보는 전문 인력이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정부처럼 여겨지며 노동의 가치와 존엄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70만 명만이 현장에 남아, 대부분이 '자격증 장롱족'으로 남은 것은 이 직업이 얼마나 기피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증명한다.


이러한 현실은 '노노케어'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노동의 가치를 보상받지 못하는 일자리는 자긍심을 가질 수 없고, 결국 '가난한 노인이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아픈 노인을 돌본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사회 전반에 고착시킨다. 결국 '노노케어'를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노인의 노동이 아니라, 그 노동에 대한 사회의 홀대인 셈이다.


이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노노케어'를 더 이상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값싼 임시방편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는 초고령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중요한 경제활동의 한 축이자,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새로운 기회다. 이를 위해 요양보호사의 처우와 급여 문제를 해결하여 '건강한 노노케어'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경력과 숙련도에 따른 합당한 임금체계를 만들고, 지역사회별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와 같이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사회적 지원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돌봄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노노케어'는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 60대 후반의 은퇴 교사가 80대 노인에게 책을 읽어주며 안정적인 소득과 삶의 보람을 얻고, 외로웠던 노인은 따뜻한 말벗을 얻어 심리적 안정을 찾는 모습.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건강한 노노케어'의 미래다. 이는 단순한 복지 비용이 아니라, OECD 최악의 노인 빈곤율을 해소하고, 위기에 처한 돌봄 시스템을 바로 세우며, 초고령 사회 대한민국을 지탱할 가장 현명하고 확실한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