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부터 발라야 인생이 굴러간다

줄리 앤 줄리아(2009)

by 기억의 틈

“You are the butter to my bread, the breath to my life.”


버터는 참 신기한 재료다.


그냥 먹기엔 느끼하고

너무 많이 쓰면 텁텁하다.


하지만 빵 위에

적당히 녹여 발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딱딱하고 거친 바게트도

그 위에 버터 한 조각이 녹아들면

놀랍게도 부드럽고 고소한 한 끼가 된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줄리아가 남편에게 듣는 말이 있다.


“당신은 내 빵 위의 버터고 내 삶의 숨결이야.”

네이버영화 스틸컷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땐

솔직히 너무 로맨틱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났다.

‘나는 누군가의 버터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내 삶에 녹아든 나만의 버터는 뭘까?’


줄리아는 요리라는 세계에서 자기 확신을 얻는다.

반복되는 실패와 혼란 속에서도

‘나는 요리를 좋아하고 잘할 수 있어’라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그 믿음이 줄리아를 만든다.


아마 나는 그 장면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확신’이라는 걸 갖지 못했다.

누군가 칭찬을 해줘도

그저 우연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여겼고

어쩌다 성과를 내도

‘다음에는 못할지도 몰라’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 보니 자꾸 움츠러들었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다 ‘그저 그런 수준’이라며

내 가능성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그런데 돌아보면

내가 앞으로 나아간 건 늘 작은 확신 덕분이었다.

“이건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번엔 내가 한번 해볼게.”

“이 정도면 괜찮은 나야.”

그런 소심한 다짐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네이버영화 스틸컷

요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누구보다 섬세하게 누구보다 천천히


누구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스스로를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 만큼은

단단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 버터 같은 사람이야.”

누군가의 삶을 조금 부드럽게 해주는 존재

그리고 내 삶을 꽤 괜찮게 만드는 나만의 힘


삶이란 빵처럼 퍽퍽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위에 사르르 녹는 확신 하나만 있다면

그건 꽤 괜찮은 인생의 한 조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