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존재(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에게

by 기억의 틈
언니네 이발관(가장 보통의 존재)

어릴 때 나는 늘 빛나고 싶었다. 무대 위의 조명을 받는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래 남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노력하면, 착하게 살면, 언젠가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이 반짝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점점 작아졌다.


예전엔 그게 참 서운했다. 왜 나는 특별하지 못할까. 왜 나는 그렇게 평범할까.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서운함이 서글픔으로 바뀌고 서글픔이 조금씩 체념으로 그리고 결국엔 이해로 옮겨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시 들은 노래가 있었다.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이 노래는 처음 들으면 슬프다. 하지만 여러 번 듣다 보면 이상할 만큼 따뜻하다. 이별의 노래 같지만 사실은 ‘존재에 대한 노래’에 가깝다.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이 한 줄이 마치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누구의 기억에도 강하게 남지 못하고 특별한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 그런 자신을 담담히 인정하는 순간의 고요함이 노래 전반에 깔려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은 늘 그렇듯 감정을 억누르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감정이 차오르기 직전의 그 미묘한 상태, 슬픔도 아니고 평온도 아닌 그 사이의 온도를 건드린다. 보통의 존재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그 무게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 같다.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이 구절은 사랑의 후회처럼 들리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존재의 후회’처럼도 들린다. 살아오며 마음에 남긴 수많은 감정들, 그중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어떤 사람이나 순간들. 그것들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노래는 아주 조용히 말해준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나는 보통의 존재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대신할 수 있고 기억 속에서 쉽게 잊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보통의 존재로서 살아가는 시간들, 매일의 출근길,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사소한 연락, 아주 잠깐 스치는 미소 같은 것들이 사실은 내 삶의 전부이자 나를 이루는 빛이었다. 이 노래가 좋은 이유는 그 ‘보통’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더 빛나라, 더 남겨라, 더 특별해지라고 말하지만 언니네 이발관은 그 반대편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기억 속에 남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하루를 견디며 살아내는 그 모습이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고.


그래서 나는 요즘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듣는다. 누군가의 별이 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의 길 위를 걷고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 노래의 마지막처럼 나는 그저 ‘가장 보통의 존재’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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