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by 날마다 소풍

미국 도서관에서 빌린 두 번째 책은 한국 작가가 쓴 한국 책이 아닌 미국인 작가인 고든 리빙스턴의 책을 한글로 옮긴 책이었다.




고든 리빙스턴,「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리더스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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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야기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 무엇인가가 새롭게 소용돌이치는 느낌과 책을 다 읽고 난 후 밀려오는 뿌듯함이 좋아서 나름 열심히 책을 읽던 시절에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다른 책들과 함께 집어 들곤 했던 책 중에 항상 인생과 철학에 대한 심리서적이 있었다. 왠지 그런 책을 읽고 나면 내 마음에 불어 들곤 하는 삶에 대한 고민과 인생에 대한 불안감이 치유될 것 같은 믿음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위로를 받거나 삶의 방향을 찾는데 도움을 받은 책들도 있었지만 다 읽은 뒤 ‘결국 그렇고 그렇다는 이야기로군’ 싶었던 좋은 이야기고 열심히 살라고 격려하는 듯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차지 않는 책도 많았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는 드라마로 인해 아주아주 오랜만에 다시 책을 읽어보기로 하면서 미국 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찾아 빌린 후 나는 내가 빌린 책들을 보며 혼자 웃었다. 마음먹고 빌린 책 중에 역시나 심리 서적류가 두 권이나 있었다. 오래되었어도 예전의 습관은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습관대로 빌린 심리 서적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이란 책은 다시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뒤 읽은 두 번째 책이다. 저자 고든 리빙스톤은 정신과 의사로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고 조울증을 앓던 첫아들의 자살과 백혈병으로 막내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저자 고든 리빙스톤은 그런 아픔 속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우울함과 삶에 대한 좌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와중에 어떻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글을 쓸 수 있었을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면 고든 리빙스턴은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자신이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채찍질의 이야기를 이 책에 적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이라는 책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관계와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과 반대로 ‘조금 늦게 나이 들고 조금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그런 소중한 것을 다시 생각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나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전보다 조금 더 내 마음과 생각에 머무는 것들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었다.



생각 하나


우리가 스스로 만든 감옥의 벽은 모험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이 실제 세상과 일치할 것이라는 꿈이 반반씩 섞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든 어떤 일에든 내가 온전히 벗어나지도 나 자신을 던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감옥 때문인 것 같다. 두렵지만 여전히 희망에 매달려 있고 희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을 놓지 못하는, 두려움이 짙을수록 희망은 끈질기게 나를 붙들어 놓을 수 없게 만들면서도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안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안 될 수도 있다고 늘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그런 걱정 때문에 망설이며 꿈만 꾸다 돌아서는 그 감옥 말이다.



생각 둘


결국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과 종국에 맞이할 필연적인 죽음에 대한 것,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만일 영생의 약속을 의미하는 종교적 믿음으로부터 위안과 의미를 취할 수 있다면 두려움은 한결 덜어질 것입니다..
인생에 담긴 즐거움의 순간을 음비한 법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이 주는 기쁨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인생이나 심리에 대한 서적을 읽을 때마다 많이 들어본 말이고 이미 알고 있는 말이지만 읽으면서 다시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한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엇인가를 염려해야 할 것 같고 왠지 무엇엔가 쫓기는 기분을 떨칠 수 없는, 내게 주어진 순간을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내 삶을 다시 들켜버린 것 같았다.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살지만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이라니! 지금 내가 사는 이 시간에 행복하는 법을 배워보자. 책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생각 셋


아이들을 사랑과 안정으로 보살피고 키우는 의무를 다한 부모라면 아이들이 노력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이 성공을 하든 하지 못하든 간에 그것은 그들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행동을 가르치려 하지만, 결국 그것을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아이들의 몫인 것입니다. 아이들은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부모가 생활하는 방식을 보고 배우게 마련이지만 그중에서 어떤 것을 보고 배우는지는 아이들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부모로 살고 있는 내게 가장 공감이 되고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한창 자신의 선택과 의지를 시험하는 나이인 십 대의 딸과 아들을 둔 엄마로 내가 더 잘 선택해줄 것만 같은 강박증도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실패가 나의 잘못인 것 같은 자책감도 모두 착각일 뿐이라는 것임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 모든 착각을 버려야만 아이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 될 것이고 나도 아이들의 인생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물론 어떤 부분은 다소 동의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많은 문장과 작가의 생각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저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고뇌와 아픔의 과정을 지나왔고 여전히 그 상처가 욱신욱신 아파올 사람으로서 자신의 경지를 넘어서는 깨달음의 어디쯤에 다다른 듯하다. 그 때문인지 이 책은 따뜻한 위로나 토닥임보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질 격려와 더 바람직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 대한 채찍질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그 격려와 채찍질이 쓰기보다 달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살기 위해 그런 안간힘을 쓰며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