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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15. 2022

아내를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위대한 사랑꾼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낯선 언어를 배우는 멋진 미국 남자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찾아온 낯선 언어를 배우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용감한 미국 남자는 로맨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처럼 로맨틱했다.




토요일 아침, 우리 세종학당의 제일 고급반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메이슨 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 미안해요. 이번 주에 아내하고 캠핑을 가서 수업에 못 가요.’  수업 시간에 못 봐서 아쉽지만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따로 수업 내용을 공부할 수 있도록 수업 녹화 링크와 PPT자료를 온라인 교실 사이트에 올려놓겠다고 안내를 하자 메이슨 씨는 웃음 가득한 이모티콘과 함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내왔다.

자타공인 애처가인 메이슨 씨의 여자 친구를 향한 순정은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내가 처음 한국어 교사를 시작하던 즈음 2급 반에서 가르쳤던 메이슨 씨는 한참 한류의 붐으로 한국어를 배우러 온 다른 학생들과 달리  여자 친구의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우리 세종학당에 찾아왔다. 여자 친구의 영어가 능숙해서 굳이 한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었으나 그는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다. 그리고 이번 학기 우리 세종학당의 가장 높은 반에서 2년 만에 메이슨 씨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사이 결혼을 한 메이슨 씨는 계속 한국어를 배웠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시작하던 시절, 더듬더듬 어색하던 한국어가 이번 겨울에는 아내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는 한국 방문 계획을 술술 설명하는 수준이 되어있었다.

여자 친구를 위해 시작한 한국어가 이제 장인, 장모와 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화된 메이슨 씨의 한국어 배움의 길을 보면서 메이슨 씨의 한국어는 그야말로 사랑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업 시간에 한국의 가족 명칭이나 처갓집과 사위 간의 상황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메이슨 씨를 볼 때면 겉모습은 미국인이어도 그의 마음과 생각, 삶의 대부분은 한국에 내어준 이 사위가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마치 내가 메이슨 씨의 장모라도 된 듯 흐뭇하다.


지난봄 수업에서 만난 키안 씨는 아이들에게 아내의 모국어와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한국어와 태권도를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열혈 아빠다. 무더운 여름에도 한국어 수업을 쉬지 않던 키안 씨는 결혼 초 한국에 갔을 때 아내의 고모님께 넉넉하게 대접받았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키안 씨는 생전 처음 만난 말도 통하지 않는 검은 피부의 조카사위를 스스럼없이 친근하게 대하고 마음을 담아 상을 차려준 고모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따스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 고모님을 만나기 위해 내년에 한국에 있는 아내의 가족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키안 씨는 그간 배운 한국어로 고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맛집을 투어 하는 한국으로의 휴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메이슨 씨나 키안 씨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나는 그들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랑꾼의 위엄을 보는 것 같다. 누구도 메이슨 씨나 키안 씨에게 한국어를 배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의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의 언어와 아내의 고국까지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위대한 사랑꾼들이다. 그래서 시간과 열정을 들여 한국어 수업에 온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언어와 문화가 오는 것임을 우리 반 사랑꾼들은 알고 있었다. 아내를 사랑해서 아내의 가족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싶고 아내의 고국에 가기 위해 휴가 계획을 세우며 한국어와 한국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삶의 일부를 선뜻 내놓는 이 뜨거운 사랑꾼들의 아내의 나라에 대한 열정이 고맙다.  한국의 딸을 사랑해 주고 한국인 아내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이 사랑꾼들을 위해 나는 힘을 다해 열심히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한국을 대표한 장모라도 된 심정으로 우리의 딸들을 사랑해주는 이 위대한 사랑꾼의 태평양만큼 넓고 깊은 그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토닥여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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