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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11. 2023

저, 로또 맞아서 호캉스 다녀왔어요!

한국어를 가르치다 로또 맞은 한국어 선생님

한 로또 판매소에서 103명이 2등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 사람이 100개에 당첨된  것일 수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와~ 나도 로또에 당첨되어 봤으면......

불현듯 작년 연말에 로또 맞은 것 같은 경험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로또라는 것이 별 것인가? 뜻하지 않은 횡재와 호사를 누리는 것이 바로 로또를 맞는 것이지. 아~ 정말 로또 맞은 것 같이 황홀한 시간이었다.

내 평생 처음 로또 맞은 것 같은 경험을 했던 시간을 뒤늦게 더듬더듬 적어 본다.




내가 한국어 교사로 일하는 세종학당에서는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학당의 학생들과 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한국어 말하기 대회나 공모전을 개최하여 수상자들에게 한국 문화 체험과 같은 특별한 선물을 제공한다. 작년 연말, 교사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이 열렸고 어떤 대회든 참가하면 미끄러지던 수많은 경험에도 '안 되면 말고'라는 배짱으로 도전했다. 참가작을 보내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종학당 본부에서 수상 축하 문구와 함께 시상식 참여 여부에 대한 문의가 왔다. 연말인 데다가 여행객 급증으로 고공행진을 하는 항공료를 계산해 보니 3박 4일간의 초청연수와 시상식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까지 간다는 것이 내 계산에 맞지 않았다. 새가슴인 나는 조심스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비를 대주는지 문의를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 비싼 항공료에 숙박과 연수 기간 비용 일체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다. 참가작을 보내면서도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제대로 보지 않은 공문을 다시 살펴보니 항목별 대상과 최우수상에게는 항공편을 포함한 초청 연수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었다. 벼락도 이렇게 기쁘고 반가운 벼락이 있나 싶은 마음에 들떠 정신없이 주변을 수습하고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 

코비드 이후 한국이 그리워도 계산기만 두드리던 참에 한국을 초청씩이나 받아 가게 되다니! 반백년을 살면서 혼자서는 처음 타는 비행기, 그것도 초청받아 공짜로 타고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도 내게 찾아온 로또와 같은 행운이 믿기지 않았다. 훌훌 혼자서 나만 챙기면 되는 여행, 그것도 나를 위해 누군가가 여비를 대주는 여행이라니, 정말 신이 났다.

인천공항에서 대기하던 기사가 서울에서 손에 꼽히는 호텔로 나를 '모시고' 갔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 뒤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세요'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호텔방은 내가 혼자 쓰기에는 너무도 황송한 방이었다. 짐을 풀어도 되나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방을 두리번거리는데 행사 진행 요원이 찾아와 내 돈으로는 사 먹기 부담스러운 수준의 풍성한 도시락을 건네주며 행사 일정을 안내해 주었다. 엘리베이터 문구대로 나의 호캉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울에서의 사흘 동안 우리 수상자들은 호텔 뷔페에서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한 뒤, 연예인이나 탈 것 같은 멋진 밴에 몸을 싣고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호사스러운 일정을 소화했다. 청와대를 시작으로 좋은 곳 보고 맛있는 것 먹고 서울에서 요즘 제일 핫하다는 카페에도 들렀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상식을 설레는 마음으로 마치고 의미 있는 좋은 곳들을 방문하며 들떠있는 동안 초청 연수 시간은 꿈과 같이 지나갔다. 챙겨야 할 아이들도 없고 일정을 짜기 위해 고심할 필요도 없으며 어디서 끼니를 해결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메뉴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는 내 인생 최고의 3박 4일간의 여행이었다. 하루의 일정이 끝난 후에는 네 명이 침대 두 개를 불만 없이 공유하기 위한 신경전과 샤워 순서 쟁탈과 같은 호텔에 가면 벌어지던 가족 여행의 소란스러움 없이, 혼자서 오롯이 호텔방을 독차지한 채 커다란 창 앞에 우아하게 앉아서 십 년 만에 보는 한국의 겨울 풍경을 커피 향과 함께 만끽하며 고요한 여유 속에서 호캉스의 진수를 맛보았다. 

남들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초청이란 것을 받아 비행기를 다 타보고 요즘 대세인 호캉스까지 누리면서 넘치도록 제공해 주는 대우를 받으니 처음에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대우를 해주나,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수업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며 연구하고 그 내용으로 재미있게 한국어 수업 하는 모습의 일부를 담아 보낸 것뿐인데 이렇게 넘치는 상을 받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과분한 호사를 누리던 중에 문득 그동안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고 맡은 일을 꾸준하고 묵묵하게 해 왔으니 이 정도의 로또와 같은 상을 받을만하다, 나만 생각해도 되는 이런 호강스러운 호캉스를 한 번쯤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귀하게 대접해 주는 세종학당에 보탬이 되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계속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하는 매우 건전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십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로또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로또는 복권이라는 것과 무관하게 살던 사람들에게 조차 로또 당첨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아는 지인은 로또 당첨 번호에 숨겨진 규칙이 있을 거라며 공책 한 권을 로또 번호로 가득 채웠다. 물론 그랬음에도 그 사람은 로또에 한 번도 당첨되지 못했다. 평생 추첨이나 응모를 해서 상품이나 상금을 타본 것이라고는 중학교 때 운동화 한 켤레 타 본 것이 전부인 나 또한 로또 당첨 소식은 뉴스에서나 접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게 찾아온 한국 초정 여행과 호캉스는 로또와 같은 횡재였다. 모두가 바라는 로또 당첨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묵묵히 하다가 문득 찾아오는 기회를 만날 때마다 꾸준히 도전하다 보면, 그리고 거기에 조금 운이 따라 준다면 로또 맞은 것 같은 기분 좋은 횡재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50년을 살면서 누려본 가장 호강스러웠던 3박 4일의 시간을 나는 로또 맞은 순간으로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혹시나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로또와 같은 또 다른 순간을 조심스럽게 기대하면서.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48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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