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자유 여행의 꼼수 몇 가지
여행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여행을 떠나겠다 마음을 먹었다면 이제 당신은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패키지여행이냐? vs 자유 여행이냐? 패키지여행은 비교적 신경 쓸 것이 적지만 일정이 빡빡하다. 반대로 자유 여행은 일정은 내 마음대로 짤 수 있지만 신경 쓸 것이 넘쳐 난다. 나 역시 첫 패키지여행을 한 후 빡빡한 일정, 반강제적인 쇼핑센터 방문 등 에 숨이 막혔다. 그래서 이후의 여행은 모두 자유 여행으로 떠났다. 자유 여행의 날들은 매번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자유를 얻은 대신 책임도 져야 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얻은 자유 여행의 경험들은 몸속에 알알이 박혀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처음'은 늘 어렵고 두렵다. 자유 여행을 꿈꾸지만 막막하기만 한 자유여행 꿈나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내가 터득한 자유여행 꼼수를 몇 가지 적는다.
보통 전혀 정보가 없는 곳에 갈 때는 대형 여행사의 스테디셀러 패키지 루트를 참고해 큰 얼개를 만든다. 여행 전문가들이 몇 날 며칠을 궁리해 만든 최적의 루트이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을 여행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명소, 먹거리, 체험 등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계산해 짜 놓은 일종의 여행 교과서다. 거기에 개인적인 취향에 맞춰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는다. 나는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보다 동네 시장, 마트, 골목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라 그런 곳들 위주로 빼거나 추가한다. 또한 특정 요일이나 특정 시간에만 열리는 곳을 중심으로 일정을 배분한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잠깐 여는 번개시장, 주말에 열리는 벼룩시장처럼 그때가 아니면 못 보는 여행지 같은 경우 그곳을 중심점 잡아 근처에 볼만한 곳들로 다음 행선지를 퍼트리는 식이다.
항공 스케줄상 불가능한 상황을 제외하고 가능하다면 최대한 아침 출국, 저녁 귀국 일정으로 맞추는 편이다. 돈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현지에서의 시간이 넉넉하게 확보된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밤늦게 출발하고 새벽 일찍 도착하는 일정이면 하루가 사라지고 만다. 뚜벅이 여행자라면 현지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대중교통의 이용 가능 시간도 체크 해야 한다. 교통비, 숙박비 등으로 날리는 비용을 감안하면 싼 항공권이 마냥 저렴한 것만은 아니다.
숙소는 위치> 청결도> 가격 순으로 선택한다. 저렴하다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외진 곳이나, 주요 여행지와 거리가 있는 곳을 택했다가는 길에 시간과 돈을 버리게 된다. 북적이는 역, 터미널 코 앞보다는 도보로 약 10분 내외의 거리를 택하면 비교적 조용하고 저렴하다. 숙소의 수준은 초반에는 저렴한 곳으로 시작해 후반부에는 좋은 곳으로 정한다. 한번 좋은 숙소에 길들여진 몸은 저렴한 곳에 가서는 단점밖에 보이지 않아 불평불만이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와 숙소가 어떤 곳이냐에 따라 여행의 짐은 천차만별이다. 호텔에만 묵는다면 수건은 필요 없다. 하지만 게스트 하우스, 호스텔이나 수건의 위생 상태를 확신할 수 없는 저렴한 숙소에 갈 때는 빨리 마르는 스포츠 타월을 챙겨간다. 벌레에 잘 물리는 편이라 벌레 물린데 바르는 약부터 전기 모기향까지 꼼꼼하게 챙겨간다. 자유 여행자에게 바이블과 같은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수명을 다하는 일이 없도록 보조 배터리는 대용량으로 챙겨간다. 분실하면 마음에 스크래치가 날 귀중품이나 고가의 물건은 절대 가져가지 않는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양말, 티셔츠 같은 건 버리고 와도 무난할 낡은 것들로 챙겨가 올 때 짐을 가볍게 한다.
인생의 즐거움 중 8할이 먹는 것인 식탐 많은 나는 현지에서 어떤 것을 먹느냐에 가장 많은 시간 고민을 한다. 보통은 네X버 블로거 후기보다 구글맵의 평점과 코멘트를 1g쯤 더 신뢰하는 편이다. 한국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라면 현지 유학생, 워홀러, 주재원, 현지 취업자 등 그곳에 거주하는 한국인 분들이 운영하는 곳들의 정보를 갈무리한다. 이도 저도 모를 때는 숙소 직원에게 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때는 좀 구체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맛집 추천해 주세요 X
-> “이 근방에서 보통 직원들 점심 먹으러 가는 식당이 어딘가요?” ○
-> “보통 직원들이 퇴근 후 한 잔 하러 가는 술집은 어디 인가요?” ○
-> “전날 술을 좀 마셔서 속이 불편한데, 가볍게 아침 식사할 만한 곳 있을까요? ○
고급 식당을 원한다면 호텔 리셉션의 직급 높은 직원에게 묻는다. 반면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합리적인 가격의 음식점에 가고 싶다면 메이드, 벨보이, 택시 기사님들의 추천을 받는다. 물론 좋은 정보를 줬을 때는 마음을 담은 약간의 팁으로 마무리 인사를 하는 편이다.
자유 여행을 하면서 모든 일정을 내가 다 짜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두 번쯤은 꼭 현지 여행사의 데이 투어를 이용하는 편이다. 개별 여행자가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코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데려가 주는 경우 고민하지 않고 데이 투어를 택한다. 현지에서 조금만 부지런을 떨며 발품을 팔면 보통 한국에서 예약하는 것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데이투어를 이용할 수 있다. 여행지의 날씨나 나의 컨디션이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보통은 현지에 도착해 상황을 보고 출발 1~2일 전에 예약하는 편이다. 또 개인적으로 영어가 능숙한 편이 아니라 관심 있는 분야의 경우는 한국에서 미리 한국어 가이드가 있는 데이 투어를 예매해서 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분신 같은 작은 인형을 데려가 인증샷을 찍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 지인에게 엽서를 보내거나 일상으로 돌아온 자신이 받아 볼 수 있도록 편지를 쓰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사진 대신, 여행 스케치를 남기기도 한다. 모두 잊을 수 없는 여행의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나 역시 나만의 소소한 여행 시그니처가 있다. 평소 쓰지 않는 향수를 가져가 여행 때 내내 한 가지 향의 향수만 뿌린다. 그러면 여행에 돌아와서 그 향을 맡을 때마다 그 여행의 기억이 자동 재생된다. 또 이번 여행만을 위한 OST를 들기도 한다. 해당 여행지와 어울리는 곡들을 선곡해 BGM처럼 깔고 여행을 한다. 현지의 카페를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늘 여행 중 한 번쯤은 꼭 해당 지역의 스타벅스를 간다. 많은 사람들이 냉장고 자석을 사거나 머그컵을 사는 것처럼, 그 지역의 스타벅스를 방문해 구경하고 커피를 마신다. 여행지의 스벅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의 기억은 캐리어가 무거워지지 않는 훌륭한 기념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