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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23. 2019

아휴 서른이면 애기지 애기

사람마다 다 때가 있으니 걱정 마


     

오랜만에 친구 ‘S’를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짝꿍으로 처음 만나 평생을 ‘절친’라는 이름으로 얽힌 사이. 우리는 수많은 흑역사와 화양연화를 함께 만들어 왔다. 그녀는 이제 7살이 된 딸을 둔 평범한 대한민국의 여자 사람이다. 꽤 오랜 시간 IT업계에서 유능한 기획자로 일했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후, 다시없을 그 소중한 시간을 딸과 함께 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과감히 퇴사를 하고 현재는 전업 주부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하지만 곧 길고 긴 딸의 유치원 방학이 시작되면 당분간은 꼼짝 못 할 그녀였다. 한동안 온전히 엄마로만 살아야 하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자 에너지 충전을 위해 어렵게 마련한 시간이었다.

     

각각 경기도의 남과 북에 흩어져 사는 우리는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딸이 먹다 남긴 음식이 아닌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버섯 파니니 등 지극히 우리 취향의 음식을 앞에 두고 어른의 대화를 이어갔다. 알코올이 한 방울도 없었지만 싱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취했다. 이런저런 얘길 이어가던 중 회사 얘기가 나왔다. 퇴사 직전까지 한 파트의 과장으로 제 몫 이상의 업무를 해내던 커리어 우먼 S. 이젠 줄줄이 후배가 딸려서 뭐만 하면 ‘꼰대‘가 아닐까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는 나의 말에 S는 물었다.

     

“후배들이 몇 살인데? “

“20대 초중반부터 다양하지... 서른 언저리 후배들이 젤 많지 뭐”

“서른? 아휴 서른이면 애기지 애기... 뭘 알고 그러는 거겠어? 지들도 네 자리 가봐야 알지”

     

서른에서 한참 멀어지고 보니 서른이 왜 이렇게 꼬꼬마처럼 느껴질까? 나도 그랬다. 인생에 있어 가장 철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 서른 언저리였다. 회의할 때면 가장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였고, 불합리와 부당함 콤보를 참지 못하는 ‘열정의 화신’이었다. 이 서른이 저물면 내 인생도 끝날 줄 알았던 철부지였다. 왜냐하면 ‘서른‘이 내 인생의 정점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서른이 되기 전, 서른은 완벽한 어른의 상징 같은 나이였다. 내가 상상한 서른의 나란 인간은 내 명의의 차와 집,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커리어를 갖춘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펜슬 스커트도, 킬힐도 잘 어울리는 완벽한 어른 여성이 될 줄 알았다. 사실 서른이었던 내게는 내 명의로 된 게 어느 하나도 없었고, 내 발에는 킬힐은커녕 스니커즈 신는 날이 더 많았다. 누가 부르면 재빨리 달려가야 하는 을 of 을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아직 갖춰진 게 없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몰아붙였다. 아찔한 절벽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서른인데 결혼은?

서른인데 아이는?

서른인데 커리어는?

서른인데 모아둔 돈은?

서른인데 집은?

서른인데 노후는?


아 개뿔. 뭐래?

     

사회가 제멋대로 만든 <서른이 갖춰야 할 101가지 기준>에 목적 달성을 했는지 끊임없이 나를 다그쳤다. 몇몇 사람들은 말했다. 서른 넘으면 여자 인생 끝난다고. 그러니 이도 저도 싫으면 더 값 떨어지기 전에 얼른 시집가라고. 100%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하기에 진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쩌나? 내 인생은 끝나지 않고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는 걸? 물론 예전에는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예전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다. 난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시대는 바뀌었고, 예전의 서른은 지금의 서른이 아니다.

     

서른이 두려운 과거의 ‘나‘같은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마흔 언저리의 내가 서른 언저리의 후배들이 아이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쉰 언저리의 누군가는 이제 막 마흔을 맞이하게 될 내가 철부지로 보일 것이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는 칠순을 훌쩍 넘긴 아들을 “애기”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서른을 먹든, 마흔을 먹든 우린 누군가에게 여전히 꼬꼬마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 실패했다고 속단할 필요도 없다. 우린 아직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엄마가 해줬던 그 말 때문이다. 언젠가 엄마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

     

“난 한 마흔쯤?

20대는 불안했고, 30대는 정신없었지. 40대가 되니까 눈이 생기더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들은 20대가 ‘인생의 꽃’이라고 하는데

뭘 몰라서 그래.

진정한 ‘인생의 꽃’은 마흔 넘어야 피는 거야 “

     

엄마의 마흔 언저리는 20대부터 30대까지 낳아 놓은 4명의 자식들이 줄줄이 딸려 있는 평범한 한국 아줌마였다. 돌아서면 밥때가 되고, 눈만 뜨면 자식들이 돌아가며 학비, 참고서비 달라고 제비 새끼들처럼 입을 쫙쫙 벌리고 있었다고 했다. 20~30대 때도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 수중에 모이지 않던 돈이 40대를 넘기니 신기하게 필요한 만큼 모였다고 했다. 또 조금 더 허리띠를 졸라맸더니 (물론 은행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집까지 장만하게 됐다고 했다. 평생 남의 집을 전전해야 했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봤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지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엄마의 마흔은 ‘분명 힘들었는데 사는 재미가 있는 날들’이었고 했다. 엄마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개복치 딸을 다독이며 말했다.

     

“사람마다 다 때가 있으니 걱정 마”

  

나는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흔을 이제 곧 시작하게 된다. 엄마 말대로라면 20대 때 보다, 30대 때 보다 훨씬 괜찮은 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0대 때나, 30대 때나 마흔을 코앞에 둔 지금이나 앞날이 불투명한 건 매한가지지만 불안할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을 떠올리며 곱씹는다.


다 때가 있다.

사람마다 다 때가 있다.

그러니 걱정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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