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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30. 2019

엄마의 여권 갱신

이번이 아마 마지막 해외여행인 거 같아



오는 8월이면 엄마의 여권이 만료된다. 10년 전, 지인들과 계모임 여행으로 중국을 가실 때 만든 여권이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몇 달 전부터 만료되기 전에 갱신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그렇게 당부를 했던 이유는 작년 겨울, 한국의 혹한을 피해 떠났던 마카오-홍콩-코타키나발루로 떠났던 보름간의 여행 끝에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이 아마 마지막 해외여행인 거 같아. 이젠 무리야 무리

     


15일간의 여행 중 엄마의 컨디션이 좋았던 날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여행 출발 전 한국에서부터 약간 감기 기운이 있었던 엄마. 따뜻한 나라에 가면 좀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기침은 더 심해졌고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잘 지경이었다. 하루 여행을 하면 하루는 호텔에서 꼼짝없이 요양을 해야 했다. 빠듯한 패키지여행이었다면 진즉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그날 엄마의 컨디션을 봐가며 여행을 겨우 겨우 이어갔다. 그래서 나에게는 중간중간 목이며 기침에 좋다는 현지 약들을 대령하는 추가 미션이 떨어졌다.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행 마지막 날까지도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병원부터 갔다. 걱정과 달리 큰 병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며칠 지내고 나니 귀신 같이 기침은 잦아들었다. 엄마의 기침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처럼, 난 엄마의 “마지막 해외여행”이라는 말을 애써 잊고 살았다.

     


다시 1년이 흐르고 올 초, 다시 <막내딸과 함께 떠나는 뜨거운 겨울방학> 여행을 준비할 때가 돼서야 다시 엄마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마지막 잎새> 여주인공의 대사 같던 엄마의 말은 애써 잊은척하고 슬그머니 여행을 준비했다. 비행기 티켓 발권을 위해 엄마의 여권 정보를 넣으려 보니 여권 만료 기한이 올해 여름이었다.

     

“엄마! 이번 여행 다녀와서 꼭 여권 갱신해! 만료된 다음 만들려면 돈도 많이 들고 복잡해!”

     

엉덩이가 무거운 엄마를 움직이게 만드는데 가장 효과 좋은 약은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이다. 작년 보름간의 여행은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아무리 호흡이 느린 여행이라고 해도 이제는 몸도 마음도 늙어 버린 부모님에게 보름이나 되는 시간 동안 낯선 땅에서 여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올해 초에는 가까운 일본으로 일주일간 여행을 갔다. 숙소도 일부러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로 정했다. 집에서 사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로 지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워하셨다. 길지 않은 비행시간, 크게 다르지 않은 기후와 생활 방식, 게다가 아침저녁으로 한식을 챙겨 먹으니 한결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셨다. 일주일간의 여행이 마무리되던 그 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공항에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이래도 마지막 해외여행이라고 할 거야? 또 갈 거잖아. 그러니까 한국 가면 꼭 여권 갱신해!”

     

나의 말에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짓던 엄마는 며칠 전 나에게 경과보고(?)를 했다.  

     

“여권 갱신했어. 24면짜리로.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다고 48면이나 필요하겠어?”

     

잊지 않고 여권을 갱신했다는 말을 기분 좋게 듣다가 덧붙인 엄마의 말끝이 쓰게 느껴졌다. 별 의미 없이 가볍게 던지는 엄마의 그 말을 듣고 딸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48면짜리를 만들 수 있는데도 굳이 24면을 선택한 엄마. 앞으로 엄마와 여행할 수 있는 날들이 나에겐 얼마나 남았을까?

     

일상에서야 같은 지붕 아래 살아도 아침저녁 잠깐잠깐 보는 게 전부다. 그나마도 서로 생황 패턴이 달라 얼굴을 마주 보고 밥 먹는 일도 손을 꼽아야 할 정도다. 그래서 쉽게 느끼지 못하던 부모님의 노화를 여행에 가면 실감하게 된다. 한 해 다르게 점점 느려지는 걸음걸이, 눈빛의 총기도 점점 흐릿해진 지 오래고, 반응 속도 역시 급격히 느려진 것을 체감한다. 24시간을 내리 붙어 있는 여행에서 부모님의 노화를 눈으로 몸으로 하나하나 확인하게 될 때면 마음에 습기 가득한 안개가 자욱이 낀다.

     

마음처럼 더 먼 곳, 더 좋은 곳을 모시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곧 오게 된다는 걸 엄마도, 나도 안다. 어차피 하늘에서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하다. 불확실한 ‘언젠가‘나, ’더 좋은 때‘로 기회를 미루지 않기. 대신 선명한 ’ 지금‘, ’할 수 있는 한‘처럼 구체적이고 확실한 상황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제 곧 엄마에게는 24면짜리 새 여권이 생긴다. 그 여권 안에 몇 개의 도장이 찍히게 될까? 사실 몇 개가 찍히든 상관없다. 다만 언젠가 엄마가 다음 세상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날, 그 도장들이 훈장처럼 남은 나와 함께한 시간의 추억들을 가득 안고 웃으며 헤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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