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호사 Sep 11. 2019

그놈의 인생샷

전 사양하겠습니다 너나 많이 남기세요


언젠가 아름다운 도시에 간 적 있다. 영화 속 세트장에 들어온 것처럼 낯설지만 신기한 풍경들이 이어졌다.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 작품이었고, 눈길 닿는 곳마다 달력 속 풍경 사진 같았다. 난 오롯이 그 순간의 공기와 느낌을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느끼고 싶어, 적당한 자리에 앉아 촘촘히 공간과 시간을 스캔을 하고 있었다. 자동차의 경적소리, 상인의 호객소리, 성당에서 퍼지는 종소리, 하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등 각종 생활 소음조차 여행의 BGM이 되는 그곳에서 누군가의 한마디에 나의 평화를 깨졌다.  


야! 빨리 와!
멍 때리고 있지 말고 사진 찍어야지!


그 친구의 의도는 확실했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만한 인생샷을 함께 남기자는 것. 우리의 인생에 두 번 다시 못 올 이 곳을 추억하기 위한 그 친구만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너희 끼리 찍으라며 사양했지만, 같이 왔는데 다 같이 찍지 않으면 무슨 의미냐는 묘한 논리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다른 친구들의 시간까지 빼앗는 게 신경 쓰여 후딱 찍고 말았다. 결국 사진 안에는 영혼이 1도 없는 억지 미소를 짓는 내가 남았다.


누가 봐도 인정하는 절세미인이었다면 달랐을까? 찍는 사진 족족 만족도 100%의 화보인생이었다면 달랐을까? 난 사진 찍히는 게 싫다. 부자연스러운 미소, 어색한 표정, 진동하는 입꼬리.. AI 로봇도 나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사진 속 나는 내가 아는 내가 아닌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되도록 얼굴이 부각되거나 정면 사진을 찍어야 할 일이 생기면, 먼저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정면이 안 나오게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원래도 사진 찍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문제는 여행이다. 평소 사진 찍히기를 즐기지 않더라도 여행에서는 사진을 찍는 일이 좀 더 당연해지는 분위기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숨 쉬듯 사진 찍는 사람이 동행하게 되면 ‘내 여행의 질‘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사진으로 여행을 남기고 추억하는 게 그 사람의 방법이라면 존중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강요하는 그 상황이 난 몹시 불편하다. 인생샷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즐겁게 찍으면 되는 거지 내켜하지 않는 사람까지 꼭 끌어들여야 할까? 이래서 자꾸만 여럿이 하는 여행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된다.  


여행지에 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여행법을 만나게 된다. 최근에는 SNS 영향 때문인지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많은 여행자들을 만난다. 그들의 여행은 심플하다. 여행지에 내려 그곳을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포토 스팟을 찾는다. 각도와 구도, 콘셉트를 잘 계산한 후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확인 후 문제가 있으면 다시 찍고, 문제가 없으면 바로 여행지를 떠난다. 그들의 열정은 험한 돌산도 웻지 힐을 신고 넘게 만들고,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서도 전문 모델 뺨치는 표정연기를 선보인다. 처음에는 전문 화보 촬영팀인 줄 알았다. 그러기에 카메라와 스태프 수는 단출했고, 모델이라기엔 일반인임이 분명했다.


뭐 본인들이 하고 싶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다만 본인들의 인생샷 남기는데 열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 종종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포토 스팟을 전세 낸 듯 점령한다던가, 가제트 팔 같은 셀카봉을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행인을 가격한다거나, 최고의 구도를 위해 길막을 한다거나, 도로 한가운데나 절벽 등에서 위험천만한 행동이 결국 사고로 이어지는 사건도 발생한다. 모두가 인생샷을 위한 일! 부! 인생샷 중심 여행자들의 행태다. 사진 중심의 여행을 하는 그들은 말한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지


아니 그게 무슨 소리! 사진 말고도 여행에는 남는 게 40만 8천 가지가 넘는다. 작은 뷰 파인더 안에 갇혀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모른다. 사진 한 컷이 다 담지 못하는 그날의 기분, 그날의 공기, 그날의 소음, 그날의 시간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리고 또 여행에서 뭘 그렇게 남겨야 하는 걸까?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지 후세에 남길 만큼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기가 기억할 역사적 인물도 아닌 나를 굳이 이렇게 애써서 기록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난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남기는 것 없이 깔끔하게 저 세상으로 가는 게 목표인 사람이다. 그래서 인생샷 중심의 여행을 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전 사양하겠습니다. 너나 많이 남기세요. 그놈의 인생샷!

매거진의 이전글 에너지가 바닥을 보이는 그날엔, 돈가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