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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21. 2021

물 만난 거북이처럼

늦는 사람이지만 뒤늦게라도 되긴 된다는 믿음


호수라고 하기에는 작고,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큰 애매한 사이즈의 저수지를 돌며 파워워킹을 할 때였다. 요 며칠 정신도, 허리띠도 풀어놓고 먹었더니 몸이 둔해진 게 느껴졌다. 영원한 숙제, 다이어트를 위해 땡볕을 피해 저수지 주변에 늘어선 가로수 그늘을 따라 걸었다. 지루함에 시선은 자연스럽게 시원하게 펼쳐진 물로 닿았다. 군데군데 삐죽 올라와 있는 돌 위에서 거북이들이 일광욕 중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 자연산(?) 거북이라기보다, 인간의 손길이 적어도 한 번쯤은 닿은 거북이인 듯했다. 애완용으로 키우다 마음이 식어 인간의 손에 버려지거나, 혹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방생된 거북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교란종으로 눈칫밥을 먹고 있는 존재였다. 여기까지 흘러온 과거가 어떻든 느긋하게 햇빛 샤워하고 있는 거북이를 보니 팔자 좋다 싶었다.     


거북이는 지루한 운동 따위 안 하겠지?  

거북이는 돈 걱정 안 하겠지?

거북이는 노후 대책 고민 안 하겠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거북이의 표정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부러움이 차올랐다. '아! 거북이처럼 살고 싶다. 느릿느릿 한가롭게'라고. 거북이 본체의 심정은 애써 외면한 채, 그 순간의 여유로움만 보고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는지, 내 시선이 따가웠는지 거북이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엎드려 있던 돌을 떠나 물속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갔다.       


물속의 거북이는 땅 위의 거북이와 달랐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물속을 헤엄치는 거북이의 속도는 지상의 속도와 천지 차이였다. 물 만난 거북이의 속도란 이토록 눈부시구나. 날쌔게 물속으로 사라지는 거북이의 뒤통수에 대고 사과했다. 잠시 거북이의 휴식을 보고 그들이 느긋할 거라고, 여유로울 거라고, 한가할 거라고 그래서 행복할 거라고 착각한 나를 꾸짖었다.      


내가 느림보 거북이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남들은 때가 되면 취업도, 결혼도, 집도 척척 사는 거 같은데 나만 뒤처진 기분이 들 때였다. 늘 뒤늦은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빠른 건 생일 뿐이었다. 말이 빠른 생일이지 1월에 태어난 나는 7살에 학교에 갔고 친구들보다 늘 작고 느렸다. 키로는 반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작았다. (다 큰 게 끝내 160cm에 닿지도 못했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성장판이 뒤늦게 열렸다. 동기들이 하나 둘 자기 자리로 가서 밥벌이하기 시작한 지 한 참 후에야 허름한 내 자리를 갖게 됐다.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은 척척 책도 잘 내는 데 난 언제까지 쓰기만 해야 하나 싶을 때 덜컥 출간 제안을 받고, 책을 냈다. 뭐든 늦는 사람, 근데 뒤늦게라도 되긴 되는 사람이 나다.      


생각해 보면 기회라는 발화점에 불씨가 닿는 순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브레이크를 잡으려고 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두려워 몸을 덜덜 떨고 있는데 정신 차려 보면 결과가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매일 우유를 먹어 댔더니 6개월 만에 10cm 가까이 컸다. 최소한 또래보다 ‘유독‘ 작은에서 적어도 ’ 유독‘이라는 딱지는 뗄 수 있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끊임없이 이력서를 넣었더니 일자리를 얻었다. 그 후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끌어주고 밀어준 덕에 지금껏 밥벌이를 하며 산다. 쉬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썼더니 내 이름 박힌 책을 갖게 됐다. 출간 작가가 된 후 생각지도 못한 기회들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사실 거북이는  멋진 존재다. 느릿느릿 차곡차곡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언제가 될지 기약할  없지만 자신의 ,  물을 만나는  순간 하늘을   물속을 빠르게 헤엄쳐 목표에 닿고 만다.  위에서는 거북이보다 토끼가 빠를지 몰라도,  속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만난 거북이의 속도는 토끼가 따라오기 버겁다. 생각해 보면 거북이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거북이 같은 느릿한 속도라도  발짝 내딛고 움직여야 물에 발이 닿는다.  속도와 방향으로 내게 주어진 날들을 차근차근 채우다 보면, 머지않아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갈 기회가  테니까. 그때,  만난 거북이처럼 날쌔게 목표지점에 닿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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