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찾다 닿게 된 나만의 결론
얼마 전, 일 때문에 집 밖에 나와 있을 때 엄마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딸, 몇 시에 와?
올 때 백화점 들러서 삼겹살 좀 사 와.”
늘 시장 정육점을 애용하는 엄마가 ‘굳이’ 백화점에 가서 고기를 사 오라는 미션을 주셨다. 이렇게 쓰고 보니 평소에도 백화점 고기를 자주 사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명백한 오해다. 엄마가 삼겹살의 구매처를 콕 집어 백화점 정육 코너로 정해 준 건 단지, 그날이 복날이었기 때문이다. 닭고기보다는 삼겹살을 선호하는 우리 가족에게 백화점 삼겹살은 일종의 ‘특식’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고기와 과일은 백화점 물건의 품질을 우월하다고 믿는 자본주의 맹신자들의 어설픈 논리다.
몇 해 전, 집 근처에 백화점이 새로 생겼다. 이 도시에 백화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기업의 무서운 자본 미(美)가 넉넉한 백화점은 처음이었다. 요즘 스타일대로 식품관과 식당가, 푸드코트에 한껏 힘을 준 백화점이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생겼다. 전국에 유명하다는 음식점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동네 노포의 분점도 입점했다. 개점 초기에는 설렘을 가득 안고 주말마다 백화점 맛집 순례를 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실망감이 컸다. 대체 왜 백화점 음식은 맛이 없는 걸까? 그러다 식품관에서 식재료는 사도 백화점 식당가나 푸드코트와 거리를 두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멀리서 온 지인과 식사를 해야 했다. 주차도 편하고 깔끔하니까 백화점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여기까지 먼 길을 왔으니 지역 명물 음식점에 가보자고 해서 백화점 식당가로 들어갔다. 집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음식점의 분점이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점인 만큼 백화점 측이 공들여 유치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원조집의 맛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일말의 의심 없이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세련된 서비스. 본점의 시니컬과 정신 사나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역시 자본의 맛이구나! 감탄하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허름한 노포에서 먹던 그대로의 세팅이었다. 반찬 구성이며 찌개 맨 위에 뿌린 고춧가루까지 별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맛을 보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어? 이거 뭐지?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산 이후 숨 쉬듯 자주 먹어 온 음식이 낯설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소꿉친구에게 느끼는 서먹함? 미용 ‘시술’을 받은 절친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의 어색함? 꼬질꼬질했던 동기가 안 본 사이 넘사벽으로 성공한 모습을 봤을 때의 거리감? 뭐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겉보기엔 분명 똑같았는데 그 맛이 미묘하게 달랐다. 모든 식재료는 물론 식기며 서비스 방식까지 분명 본점에서 그대로 공수해 왔을 텐데 이게 무슨 일일까? 처음 이곳의 음식을 먹어 본 동행은 뭐가 이상한지 영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찌개 국물에 밥에 비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하는 나에게 물었다.
“대체 뭐가 다른 건데?”
“본점에서 먹은 맛이랑 달라.
이렇게 영혼이 없지 않다고!”
그 음식은 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일종의 ‘소울 푸드’다. 난 비록 여기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이 동네에서 발 디디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모를 리 없는 맛이다. 내가 한동안 가지 않은 사이 맛이 변했을까 싶어 이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본점에 가봤다. 걱정을 가득 안고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먹어 봤다. 역시나였다. 음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제야 하나의 결론에 닿았다.
아!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구나
잠시 잊고 있던 진리를 꺼내 준 사건이다. 누구와 먹는지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듯, 어디서 먹느냐도 중요하다. 찌개 국물이 튄 유명 인사들의 사인으로 벽이 도배된 허름한 음식점에서 먹는 것과 심플 & 모던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둘러싸여 먹는 맛은 달랐다. 찌개 끓는 소리와 얼큰하게 술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인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먹는 맛과 잔잔한 뉴에이지 송이 흐르고 나지막이 수다를 떠는 고상한 분위기에서 먹는 맛은 달랐다. 화력 센 구식 화구에 화르르 끓인 찌개의 맛과 깐깐한 백화점 안전 관리 기준에 맞춰 가녀린 불꽃을 가진 최신형 가스버너에 끓인 찌개의 맛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백화점 임차료를 맞추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가를 줄여야 했을 거다. 작은 차이들이 결국 큰 맛의 차이를 만들었다. 모두가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NN년째 원조집의 음식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미세한 차이다.
백화점 F&B(Food and Beverage) 팀의 노력은 분명 인정받아야 한다. 굳이 차를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집 근처 백화점에서 지역 맛집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 가서 먹는 음식들은 묘하게 아쉽다는 기분은 지울 수 없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원조집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맛의 차이도, 백화점이니까 뭐라도 더 나아야 하는 건 아닐까? 더 큰 기대를 품고 맛을 봐서 실망했을 수도 있다. 기대라는 건 때로는 약이 되고, 많은 경우 독이 된다. 그래서 백화점 음식을 먹을 때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맛의 아쉬움은 멀리 가는 수고와 시간을 아꼈다는 기쁨으로 대신 채운다. 백화점 음식이 왜 맛이 없을까? 에 대한 나만의 답은 그렇게 정리됐다. 진실이 뭐든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는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