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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15. 2021

점보기의 필요성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 내는 가장 우아한 움직임, 발레. 중력을 거스르는 발레 무용수의 몸짓을 볼 때면 같은 종족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사람의 몸으로 가능한 일일까 싶은 동작들이 발레엔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건 역시나 연속 회전. 한 다리로 서서 몸을 완전히 회전시키는 푸에테(Fouette)는 무용수의 자존심이 걸린 고난도 테크닉이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이 동작을 무용수들이 해내는 비결은 뭘까? 궁금한 건 또 못 참는 성격이니 여기저기 뒤진 끝에 답을 찾아냈다. 발레리나가 인간 팽이가 된 듯 돌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스포팅(Spotting)’이었다. 허공에 자신만의 점을 찍어 놓고 시선을 계속 그곳에 고정한다. 돌 때마다 최대한 머리를 빨리 돌려서 초점을 유지하는 게 어지러움을 이겨내는 그들의 방법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처음은 어렵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무용수들은 32바퀴 연속 회전도 어렵지 않게 해낸다.  

   

발레리나와는 여러모로 거리가 먼 몸뚱이를 가지고 있지만 나도 '스포팅'을 한다. 일주일에 세 번, 요가 센터에서. 팔이나 한쪽 다리를 구기거나 꼰 상태에서 한 발로 서기, 몸을 세워 머리로 서기 등 두 발을 땅에 딛는 평범함을 거스르는 요가 동작을 할 때면 화분에 겉에 새겨진 happiness라는 글자든, 파리의 눈을 닮은 스피커든, 나무 벽의 옹이든 눈이 닿는 어느 한 곳에 점을 찍고 시선과 정신을 모아 집중한다. 그럼 희한하게 요동치던 심장이 잠잠해지고 흔들리던 몸이 서서히 중심을 잡는다. 조금 전 까지도 휴대전화 매장 앞 이벤트 풍선 인형처럼 허우적거리던 몸뚱이가 서서히 고요를 찾는다. 요가를 하면서 이게 되나 싶은 일이 내게 벌어진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된다. 평생 몰랐던 내 몸의 잠재력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       


마음이 흔들리면 몸이 흔들렸고, 몸이 흔들리면 마음이 흔들렸다. 내 흔들림의 이유의 출발점을 찾아보면 대부분 ‘비교‘였다. 어느 책에서 본 것처럼 ’ 남들은 단순하고 심플하게 한결같이 잘 되는 거 같고 나는 복잡하게 안 되는 거 같은 일' 투성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듯 쑥쑥 올라가 커리어를 쌓는 동기들에 비해 나는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손수 계단 하나하나 만들며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드 머니가 세포분열을 하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차가 되고 집이 되고 집이 되는 기적(?)을 이루는 것 같았다. 남들이 이룬 성취와 내 손에 쥔 결과를 비교하면 마른 대추처럼 쪼그라 들었다. 내 아등바등의 결과가 제자리걸음이라는 사실에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다 내동댕이쳐졌다. 내가 애처로워서 서러움에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드넓은 바다 위에 잉크 한 방울을 똑하고 떨어뜨리는 것처럼, 시도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수고로움. 그게 괴롭고 또 허망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머리를 흔들고 나면 나를 괴롭히던 머릿속에 있던 나쁜 기운들이 다 떨어져 나가길 빌면서.      


하지만 여기서 내가 단단히 놓친 부분이 있었다. 내가 보게 되는 건 대부분 노력은 스킵된 결과라는 사실이다. 한 사람이 어떤 결과를 얻기까지 겪었던 시행착오나 애씀을 100% 다 알 수 없다.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뿐. 그러니 드러나는 이 사람의 결과, 저 사람의 결과만 내 눈에 보인다. 그것만 보고 나를 다그쳤다. 각자의 목표지점과 실행 방법이 다른데 결과라는 이름의 틀에 나를 욱여넣으니 몸과 마음이 성할 리 있나? 흔들리고 넘어지는 건 당연했다. 누군가에게 명약이 내겐 독약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남들의 목표가 꼭 내 목표일 수도 없는 것처럼 남들의 방법이 내게도 꼭 맞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연말연시가 아니어도 ’점보기‘를 한다. 몸과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회전하는 무용수의 비결, 스포팅을 떠올린다. 허공에 자신만의 점을 찍어 놓고 회전 후 재빨리 시선을 그곳에 고정하는 무용수처럼. 남들이 어디로 향하건, 어떤 방법을 쓰건 흔들리지 않고 내가 정한 방법으로 내가 목표했던 지점을 향해 간다. 걱정을 가장한 선 넘는 참견을 하건, 그 어떤 개소리를 쏟아내건. 책임지지도 않을 훈수 따위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스킬을 발휘하면서, 내게 필요한 꿀 조언만 신중하게 취사선택해 받아들이면서 내 방향과 내 속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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