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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28. 2022

언제부터 떡볶이는 용암 맛이 되었나?

귀여운 매운맛 떡볶이 마니아의 절규


      

친구로부터 배달 앱의 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 금요일 저녁 한 주간 고생한 나를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입맛을 찾기 위해 떡볶이를 먹기로 결심했다. 전통의 강자, 엽기적인 매운맛의 떡볶이부터 로제 떡볶이, 마라 떡볶이 등 핫한 떡볶이들의 이름 속에 눈에 띄는 이름을 발견했다.    

  

바. 질. 크. 림. 떡. 볶. 이.     


한평생 먹어 온 떡볶이 그릇 수만 따져도 족히 내 두피를 뒤덮은 머리카락 수는 능가할 만큼 떡볶이 좀 먹어 본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이름만 듣고는 파스타 면대신 떡볶이를 넣었나? 싶었다. [떡+새우+비엔나소시지+ 베이컨] 메뉴 설명을 보니 바질 크림 파스타와 별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연로한 부모님도 드셔야 하니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 오토바이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떴다.     


말끔하게 포장된 떡볶이를 여니 싱그러운 바질 향이 먼저 코를 자극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내용물을 섞으니 손가락만 한 밀떡 몇 개와 베이컨 조각, 소시지, 새우가 걸린다. 오늘의 주인공은 떡볶이니 연둣빛이 도는 크림색 소스에 듬뿍 적셔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은은한 바질 향과 부드러운 크림 맛, 쫄깃하게 씹히는 떡볶이... 그 끝에서는 매운맛이 따귀를 때리듯 혀를 후려쳤다. 다급하게 노란 단무지를 집어 진화에 나섰다. 덜 매운 떡볶이를 먹어 보려고 크림 떡볶이를 시킨 건데 이마저 매웠다.      


떡볶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며 살던 20대 시절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들로 날 선 감정들을 다독였다. 불 닭, 불 짬뽕, 불 주꾸미 같은 음식이 나의 비공식 ‘빡침 소화제‘였다. 맵부심에 취해 있던 내가 ’ 매운 거 먹자’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찰떡같이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간파했다. 딴생각이 들지 못할 만큼 입안이 얼얼해지는 음식을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땀과 함께 스트레스도 몸 밖으로 배출되는 기분이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운 음식을 찾아 먹던 내게 어느 날 누가 ’ 엽기적인 매운맛 떡볶이‘를 추천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니 잘 맞을 거라고 했다. 기대에 차 ’ 엽기적인 매운맛 떡볶이‘를 영접한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 충격에 휩싸였다. 매운맛을 좋아했던 내게 그저 용암처럼 타오르는 엽기적인 매운맛은 고통 그 자체였다. 가히 폭력적인 매운맛이었다. 나의 미각이 이상한 건지, 그저 맵기만 한 이 음식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열광할까? 의문이 생겼다.     


지금은 유행이 한풀 꺾이긴 했지만 한창 ’ 엽기적인 매운맛 떡볶이‘가 인기일 때는 괴로웠다. 특히나 직장 상사가 이 떡볶이의 마니아라면 더더욱 곤란했다. 밖에 나가서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사무실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만큼 바쁠 때는 시간을 아끼면서 스트레스도 풀기 위해 종종  ’ 엽기적인 매운맛 떡볶이‘를 배달 주문했다. 어지럽게 널린 노트북과 문서들을 한쪽으로 미뤄두고 회의 테이블 한쪽에 둘러서서 떡볶이를 식도로 밀어 넣는 날. 같이 딸려 온 주먹밥 몇 개를 집어 먹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누룽지나 달걀찜이라도 먹으라고 내 앞으로 미뤄주지만, 불난 혀를 진정시켜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존재였다. 먹는 시늉만 하다가 슬쩍 자리를 피해 조용히 커피를 들이켜곤 했다.     


라면 수프도 1/3은 빼고 라면을 끓이고, 샐러드드레싱도 반만 넣어 먹는 내게 진하다 못해 매서운 맛들은 고문에 가깝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혀의 점을 자극하는 통각이라고 했던가? 자극적인 세상을 살려면 엽기적인 맛의 떡볶이 정도로 화난 듯 매섭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 정도의 매운맛이 아니라면 존재감 없는 맹맹한 맛으로 버티긴 힘든 세상인 걸까? 뉴스를 봐도, 댓글을 봐도, 러시아워 대중교통을 타도 온통 화난 사람들 천국이다. 불이라도 난 듯 화르르 자신을 불태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당신이 무엇을 즐겨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가였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      


나는 그냥 매콤 달콤한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세상은 용암 맛 떡볶이 천국이다. 용암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귀여운 매운맛을 추구하는 1인의 선택지는 점점 사라져 간다. 용암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핵? 블랙홀? 더 센 자극을 뒤쫓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한다. 대체 어디까지 매울 작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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