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제는 전원을 꺼야 할 시간
메신저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깜빡였다. 보낸 사람은 똘똘이 스머프처럼 똑 부러지는 A. 급하게 보낼 중요한 문서를 워드로 작성 중인데 무슨 짓을 해도 온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30분째 혼자서 씨름하다가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려 보겠다며 단톡방에 SOS를 쳤다. 그런 난감한 상황을 한 번쯤은 겪어 봤기에 다들 자기 일처럼 달려들어 해결법을 검색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검색창부터 켰다.
컴퓨터나 기계 쪽에는 문외한이라 검색창에 어떤 단어를 써넣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증상을 검색창에 넣었는데 딱히 뾰족한 묘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시도할 만한 방법을 캡처해 단톡방에 올렸다. 나 말고도 단톡방의 여러 사람이 이러저러한 방법을 제안했다. 시도해 본 것도 있었고, 아닌 것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만능 해결책이 떠올랐다.
“그거 있잖아요. 껐다 켜기 신공! 해 봤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다. 기계들이 버벅댈 때 뒤통수를 한 대 팍 쳐 주거나 전원을 껐다 켜는 물리적인 방법이 종종 통할 때가 있었다. 특히나 지극히 문과형 인간인 나 같은 사람에게 이보다 확실한 해결책이 없었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하는데 컴퓨터나 기계 쪽이라면 나는 원인을 파악할 이과적 지식이 없다.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단톡방에서 내가 던진 <껐다 켜기 신공>이라는 단어는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둥둥 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부끄러워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런데 얼마 후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와~ 이거네요! 다시 시작했더니 정상으로 돌아왔... 나는 무엇을 위해 30분을 허비했는가... 자괴감이 들었어요 ㅠㅜㅠㅜ.”
별 기대 없이 던졌던 방법이 먹혔다. 일종의 과부하랄까? 평소보다 오래 그리고 고강도로 컴퓨터를 썼더니 생긴 문제였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 우연히 얻어걸린 결과. 대단한 방법은 아니지만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 기뻤다.
껐다가 다시 켜기. 내가 요즘 자주 쓰는 방법이다. 몸도 뇌도 쉽게 과부하가 걸리는 낡은 컴퓨터 상태라 조금이라도 버벅거린다 싶으면 일단 전원을 끈다. 생각의 스위치도 내리고, 마음의 눈도 감는다. 아무리 좋은 조언이나 꿀 같은 제안도 용량보다 넘친다 싶으면 귀를 닫는다. 선을 넘는 게 느껴지면 감정의 셔터도 내린다. 주는 대로 받으면 탈이 난다. 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한계에 닿기 전에 전원 끄고 열이 내리면 다시 켠다.
한 번 끄면 영영 켜지지 않을까 봐 주야장천 전원을 켠 상태로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 퓨즈가 나가버렸다. 중간중간 끄고 켰다면 오래갈 수 있었을 텐데, 과신과 욕심이 화를 불렀다. 그렇게 제대로 망가지고 난 후에는 잊지 않고 신호가 보이면 전원 끄기를 실행한다. 생각 스위치를 끄고 산책을 하며 내 시간을 갖는다. 전력 질주를 멈추고 느긋하게 요가를 한다.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책을 편다. 누군가의 속도에 맞추느라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내 호흡을 찾는다. 누가 내 호흡의 사정까지 봐주는 기적 같은 일은 없으니 내 호흡은 스스로 챙길 수밖에 없다.
"사람도 컴도! 종종 이렇게 한 번씩 껐다 켜줘야 하나 봐요!"
단톡방에 집단 지성의 힘(?)을 감탄하는 메시지가 난무하는 사이 나도 그 틈에 껴서 문장 하나를 문장을 써서 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지금 나는
몸과 마음의 전원을 끌 타이밍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