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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29. 2018

혼자 하는 여행은 짧은 연애와 같다 - (6) 좋은 날

혼자 떠난 시즈오카




일본 관광지 100선에서 1위로 선정될 정도라는 벚꽃이 아름답다는 니혼다이라! 그때까지만 해도 봄이 새끼발톱만큼 밖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만개했을 때의 그곳을 상상하며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가 이번에 향할 곳은 나를 이곳 시즈오카로 이끌었던 역사적인 그 장소로 가기 위해서다.



비교불허! 압도적인 비주얼의 후지산 뷰포인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니혼다이라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어중간한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호텔 곳곳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처럼 숙박을 하지 않아도 그저 구경삼아 오는 방문객이 많다 보니 로비와 반층 아래에 위치한 카페(테라스 라운지)는 북적였다.     


이건 나갈 때 찍은 거라 한가한 분위기

총총 발걸음도 가볍게 곧장 나의 목표물,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한국에서의 버릇처럼 자리가 있나 두리번거리니, 직원이 다가와 뭐라고 뭐라고 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현재 만석이고 잠시 대기해야 한다는 듯하다. 한 10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나를 안내한다. 오직 나를 위한 자리로.   


카페 한가운데 위치한 6인이 앉아도 여유로울 정도의 좌석~! 거의 누워서 먹어도 될 만큼 넓은 소파 자리다. 아... 혼자 앉기는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직원에게 나 혼자인데 괜찮겠냐고 했는데 괜찮다며 무척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했다. 자리에 앉고 보니 명당 중의 명당이다. 시원스럽게 큰 통 밖으로는 후지산이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잔뜩 설레 메뉴판을 훑고 시즈오카의 명물인 딸기가 올라간 베리 팬케이크와 커피세트를 시켰다. 마스카포네 치즈크림과 블루베리 콤포트가 곁들여진 이름부터 색감, 식감 모두 봄봄스러운 메뉴다.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안전한 조합의 메뉴를 주문하고 나니 이제 오롯이 풍경 감상의 시간이다. 잘 가꿔진 잔디밭 뒤로는 진녹색의 녹차밭이 펼쳐져 있고, 다시 그 너머에는 시즈오카 시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좀 더 멀리로는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 후지산이 우뚝 자리 잡고 있다. 아... 분명히 겹겹이 무언가 있는데 속이 다 뻥하고 뚫릴 만큼 시원한 풍광이다.     


잠시, 풍경에 젖어 감상에 빠진 사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팬케이크 세트가 나왔다.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팬케이크를 잘라 한입 베어 물었다. 아... 짧은 탄식이 입안에 퍼졌다. 이 부족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솔직히 꽉 찬 맛은 아니다. 평범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직원이 정성스레 내리던 드립 커피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산미 가득했다. 그 외에는 한 달 여가 훌쩍 지난 지금은 어떤 향, 어떤 맛이 났었는지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특색은 없다.   


그간 일본에 가면 라멘은 안 먹어도 팬케이크는 빼놓지 않고 먹어 왔던 게 나다. 요즘 한창 한국에서 핫한 부들부들한 수플레 스타일의 팬케이크부터, 정말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신 것 같은(우리 엄마는 사실 한 번도 해주지는 않으셨음ㅜㅜ) 가정식 팬케이크까지 다양한 팬케이크를 맛봐 왔는데 눈을 감고 먹었다면 연남동에서 먹었는지, 샤로수길에서 먹었는지, 전주 한옥마을에서 먹었는지 모를 맛이다. 그만큼 강렬한 한방은 없다는 말이다.     


사실 녹차와 함께 시즈오카를 대표하는 작물이라는 딸기에 대해 기대가 컸다. 늘 먹어 왔던 새콤달콤하고 향긋한 한국 딸기에 익숙했던 내 입엔 시즈오카의 딸기는 다소 단단했고, 향과 단맛은 부족했다. 컬링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가 왜 한국 딸기가 맛있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직 맛이 차기에 이른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전체적으로 볼 때 누군가는 풍경보다 못한 맛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이 아름다운 풍광에 음식까지 맛있었다면 그것은 투 머치, 즉 과유불급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 같은 풍광 앞에 음식은 거들뿐. 이 호텔 존재의 이유를 오직 눈으로 느끼라는 니혼다이라 호텔 사장님인지 회장님 인지의 깊은 혜안을 혀끝으로 느꼈다. 그저 그 가격에 그 뷰를 보며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그분들께 감사를 드릴뿐이다.       


후지산을 안주삼에 세상에서 제일 여유로운 티타임을 가졌다. 일반 카페였다면 좀 서운할 수도 있는 맛을 후지산이 다 채워줬다. 그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이번 시즈오카 여행 대망의 만찬 장소로 정하고 3일 후 다시 그곳을 찾았다. 레스토랑의 런치 뷔페도 꽤 괜찮다는 후기에 예약도 안 하고 겁 없이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나는 간과했다. 그날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당일 예약은 이미 꽉 차서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시니컬한 지배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내가 아니다. 나는 늘 대안을 찾는다. 마지막 만찬을 실패로 물들일 수 없기 때문에 곧장 카페로 향했다. 그리곤 이번에는 딸기 케이크 세트를 시켰다. 특별하지 않은 커피와 또다시 마주 했다. 그리고 팬케이크 보다 더 평범했던 딸기 케이크와도 만났다. 하지만 그 평범함 들을 다 물리칠 후지산 뷰가 있기 때문에 나는 만족했다. 혼자 오롯이 시즈오카 여행의 마침표를 찍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곳에 간다면 혼자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가고 싶다. 그때는 최소 1박 이상 묵으며 그곳의 하루를 오롯이 느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해가 뜨기 전부터 별이 질 때까지... 니혼다이라의 풍경이 어떤 모습일지 곧 다시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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