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Mar 25. 2018

먹부림으로 기억하는 6일간의 홋카이도

나를 흥분케 한 홋카이도의 맛 ④ 삿포로 스스키노 유키카제(雪風ゆきかぜ)


삿포로의 아침과 밤


사실 홋카이도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다. 이 도시는 오전 11시가 넘어야 활기를 띤다는 것을... 부지런한 일본 사람들을 봐왔던 그간의 도시들에서는 늘 이른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열린 음식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유독 홋카이도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1일 8식을 목표로 했기에 호텔 조식 따위는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의 시간들이 익숙해질 무렵. 여행만 오면 아침형 인간이 되는 우리도 서서히 이 도시의 시계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좀 느지막이 일어나 시간 제약이 없는 공원 같은 관광지 하나를 둘러보고 11시 음식점 오픈 시간에 맞춰 이른 점심을 먹고, 2시~3시쯤 카페에 가고, 8시~9시쯤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11시~12시에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밖에 나가서 야식을 먹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삿포로 최대의 환락가 스스키노에는 밤 10시에 오픈해 다음날 새벽까지 영업하는 가게들이 넘쳐난다. 그중 유키카제(雪風ゆきかぜ)는 숙소 근처에 꽤 유명한 라멘집이다. 카라미소라멘(매운된장라면)이 유명하다는데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숙소에서 잠시 쉬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그 라멘집으로 향했다. 저녁식사 시간도 훌쩍 지났고, 술을 마시던 취객들이 해장을 위해 들르기는 좀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 얕은 계산은 오산! 이미 약 10명의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럴 때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오직 현지인들만 줄을 서 있는 곳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줄을 서야 한다. 뜨내기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곳이라면 합리적인 맛과 가격은 보장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퇴근 후 들른 샐러리맨부터, 근처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고 집에 가기 전 들른 20대, 여행 혹은 출장을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인 듯 택시에서 캐리어째 들고 내린 사람까지... 눈길 위에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 줄 끝에 섰다.     


한 30분쯤? 삿포로의 밤거리를 음미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우리도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 10석 정도로 작은 가게 안은 라멘을 끓이는 열기로 후끈했다. 가게 한쪽 벽면에는 나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유명인사들의 사인이 가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는 슈퍼 주니어 김희철이 다녀간 곳으로 나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기다리는 동안 미리 주문을 받아 음식은 자리에 앉자 금방 나왔다. 카라미소라멘. 그간 일본 특유의 간장 베이스 가득한 음식들에 지쳐 있던 터라 칼칼한 게 땡겼다. 매운 된장라면이라면 그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기에는 꽤 매콤해 보이지만 그것은 레드 매직

결론부터 말하면 유키카제의 카라미소라멘은 나의 그 매운맛의 갈증을 해소해 주진 못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타국 땅에서 매운 음식 시킬 때마다 늘 당하면서도 매번 이렇게 “매운 “표시가 된 음식을 시키곤 한다. 특히나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매움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매움의 차이는 크다는 걸 국물을 한 스푼 떠 마시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잡내 없이 깊고 진한 국물 맛과 잘 삶아진 차슈, 꼬들한 면발까지 지금까지 일본에서 먹어 본 라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라멘이다. 다만, 국물은 다소 짭짤하다.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구글맵의 리뷰 중 ”이 집 미소라멘 드시고 짜다 생각하신다면 그냥 일본 라멘은 나랑 안 맞는구나... 하고 넘기세요 어지간한 라멘은 이 정도는 다 짭니다 “라는 멘트가 왜 들어가 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위에 언급한 매운맛처럼 한국의 짠맛과 일본의 짠맛의 기준은 좀 많이 다르다. 세계의 시선으로 볼 때 일식은 고급스럽고 깔끔한 건강식으로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진짜 하이엔드급 음식이 아니라면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각종 소스와 조미료로 부족한 맛을 덮기 마련이다. 빠르고 값싸게 제공해야 하는 서민들이 먹는 음식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유키카제의 미소라멘은 ”평범한 일본 사람들이 먹는 라멘 한 그릇“을 경험하게 해 준 것으로 충분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국 사람에 입에 짜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그게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이구나 인정하면 되는 거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즐거움이다. 내 일상 속 당연했던 것들과 잠시 멀어져,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다름의 차이를 깨닫고 인정해가는 것! 그리고 돌아와 일상 속 당연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 그래서 나는 여행이 즐겁다.

매거진의 이전글 먹부림으로 기억하는 6일간의 홋카이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