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수제비와 뇨끼의 상관관계
언젠가 달팽이처럼 등을 동그랗게 만 채로 티브이를 보던 엄마가 물었다. ”뇨끼가 뭐야?” 한 예능 프로의 미션으로 주인공 어머니께 음식 대접을 위해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 중이었다. 출연자들은 뇨끼를 만들기 위해 시장을 돌며 감자와 밀가루를 샀다. 방에서 물먹으러 나왔다가 엄마의 느닷없는 질문 공격에 당황해 심드렁하게 답했다. “뇨끼? 음... 이탈리아 파스타인데 일종의 국물 없는 감자수제비 같은 거야. 감자를 넣은 반죽으로 만든 수제비.” 엄마가 묻는 말에 답을 해놓고도 영 개운하지 않았다. 뇨끼를 눈으로 본 적도, 입으로 먹어 본 적도 없는 엄마의 머릿속에 뇨끼는 그저 감자수제비로 기억될 테니까. 칠십 평생 처음 들어 본 괴상한 이름의 뇨끼가 감자수제비 맛이라니 신기해하셨다. 사실 뇨끼와 감자수제비는 분명 다른 음식이다. 하지만 엄마가 가늠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당한 요리가 없었다.
곧 엄마에게 뇨끼의 신세계를 열어 드리리라 다짐했지만 현실이 된 건 한참 지나서다. 오른쪽 무릎을 수술한 지 1년 만에 고장 난 왼쪽 무릎을 고치기 위해 수술대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17년 전에 수술한 왼쪽 무릎의 인공 관절이 또 말썽을 부려 재수술이 필요했다. 한동안 입원을 하고, 또 퇴원하더라도 당분간 외출이 어려워질 엄마. 그러니 입원 전 마지막 콧바람을 넣는 외출의 식사 메뉴로 뇨끼를 택했다.
집 근처에 이탈리아 식당이 없는 건 아니지만 뇨끼를 그것도 냉동이 아닌 수제 뇨끼를 취급하는 곳을 찾아 굳이 택시를 타고 옆 옆 동네로 향했다. 주말에는 예약 없이는 맛볼 수 없다는 그곳에 프리랜서의 특권, 평일 점심 무예약 신공으로 도착했다. 오너 셰프의 작은 레스토랑에는 들어서자마자 허브 향이 코를 확 찔렀다. 이탈리아 가정식을 표방한 요리들이 나오는 레스토랑답게 매장 가운데 난로 위 주전자에서 허브차가 끓고 있었다. 정수기의 온수가 아닌 뭉근하게 끓인 허브차를 홀짝이며 엄마와 나는 각자의 학창 시절 겨울이면 교실 난로 위에서 끓던 보리차 주전자에 대한 추억에 대해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손질한 천연 재료로만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니 이해해 달라는 메뉴판 첫 장의 당부와 달리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식전 빵에 이어 나온 이탈리아 염장 햄, 프로슈토가 올라간 샐러드를 맛본 엄마가 말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샐러드 중 최고로 맛있어!
불규칙하게 부순 견과류가 씹히는 수제 렌치 드레싱이 입에 맞으셨는지 설거지라도 하듯 접시에 남은 소스를 양상추로 싹싹 모아 드셨다. 워밍업 차원으로 시킨 샐러드가 이 정도면 메인 메뉴는 대체 어떨까?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때, 드디어 올 게 왔다. 테이블당 1개만 주문이 가능할 만큼 인기 메뉴인 ‘포르치니 뇨끼’. 버섯 향이 강한 ‘포르치니 버섯’과 진한 크림이 진한 수제 감자 뇨끼가 도착했다. 새우 들어간 파스타가 드시고 싶다 하여 바질 크림이 들어간 새우 파스타도 함께 당도했다. 이국적인 향신료라면 고개를 젓는 입맛이 흥선대원군인 아빠와 함께였다면 감히 시키지 못할 메뉴들이었다.
살짝 구워 노릇한 뇨끼 반죽 덩이가 하얀 크림소스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눈처럼 뿌려진 치즈 가루 사이사이로 트러플 향이 슬쩍 올라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메뉴 앞에 선 듯 포크를 가져다 대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딸이 시범을 보인다. 뇨끼를 포크로 푹 찍어 소스를 이리저리 입힌 후 한 입 베어 먹는다. 눈치 보던 엄마도 나처럼 뇨끼를 드셨다. 만 71세에 맛보는 첫 뇨끼다. 난생처음 뇨끼를 입에 넣은 후 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아 이런 거구나!
이거 감자수제비랑 비슷하면서도 달라!
옅은 안도와 짙은 후회가 교차했다. ‘왜 이제야 왔을까?’ 예상치도 않게 수술이 빠르게 결정되고 엄마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어두웠다. 1년 만에 또 수술해야 한다는 두려움, 재활 치료의 고통, 갑자기 수술비로 빠져나갈 목돈, 자리를 비우는 미안함,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거 같아 자꾸만 위축되는 모습이었다. 뇨끼 덕분에 수심이 가득했던 엄마의 얼굴에 잠시나마 생기가 돌았다. 그제야 왜 택시를 타고 옆 옆 동네까지 와서 뇨끼를 먹는지 엄마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딸은 세상 산해진미 다 먹어 보고 다니는데, 정작 엄마는 감자 수제비와 잔치국수, 김치찌개와 미역국이 전부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어쩌다 외식이라고는 돼지갈비와 짜장면. 지극히 아빠 취향의 메뉴들뿐이었다.
얄팍한 부채감을 안고 살다가 작정하고 굳이 손잡고 나오지 않으면 엄마는 평생 뇨끼 = 감자수제비로 알고 사셨을 분이다. 우아하고 교양 많은 사모님의 세계와는 먼 곳에 무릎이 닳도록 억척스럽게 살아온 엄마에게 대접한 뇨끼 한 접시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 있다. 미안함, 감사함, 그리고 응원이 가득하다. 다시 시작될 고통스러운 수술과 회복의 시간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뇨끼를 먹으러 오기로 약속했다. 접시 바닥까지 싹싹 긁어 드신 엄마는 며칠 후 뇨끼의 추억을 안고 입원했다. 그리고 남은 딸에게는 엄마를 떠올릴 인생 음식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