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판치는 세상에 ’내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생전 써보지 않았던 디자인 툴을 써보겠다고 꼼지락거리다가 마법 지팡이 모양의 아이콘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뭔가 싶어 눌러보니 ’AI 기반 글쓰기 어시스턴트’였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능이라고 했다. 또 얼마 전, 업무 협업 툴을 이용해 문서를 정리하다가 반짝이는 별 모양 아이콘이 눈에 띄었다. 요약, 번역은 물론이고 블로그·설명·이메일 초안 작성, 아이디어 추출, 맞춤법·문법 수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기능이었다. 나는 신기술이라고 하면 겁부터 먹는 사람이다. 머리 회전이 느리며 고지식한 문과형 인간이라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쫓아가기 벅차다. 지금껏 말과 글을 다듬어 먹고살았던 내게 인공지능 글쓰기 기술은 반갑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하다. 내가 글쓰기 AI 툴을 받아들이는 속도와 별개로 세상은 이미 인공지능 기계들이 접수한 지 오래다.
평생의 동반자, 커피믹스와 이별을 선언한 아빠가 대체재를 찾았다. 날이 쌀쌀하니 커피 대신 따끈한 쌍화차가 좋겠다며 주문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최고의 쌍화차를 진상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뒤졌다. 판매량과 후기가 많은 제품을 클릭하고 ’ 도움이 돼요 ‘를 많이 받은 후기를 읽다가 뭔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아이디는 다른데 구성과 흐름, 분량과 사용하는 단어, 표현까지 한 사람이 썼다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비슷비슷한 내용이었다. 분명 구매자만 후기를 쓸 수 있는 곳인데 복제 인간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후기가 복사 후 살짝 손보고 붙여 넣기 된 걸까? 비단 쇼핑몰 후기뿐 아니다. 블로그 포스팅도 인스타 피드도 하다 못해 댓글창까지도 인터넷 세상 어디든 복붙 한 듯 질리는 맛의 글들이 넘쳐난다.
한참 머리를 굴리다 의심 가는 쪽이 있었다. <글 못 쓰는 사람도 글로 돈 버는 꿀팁>류로 목청 터져라 핏대를 올리던 ’ 성공 중독‘ 인플루언서의 콘텐츠가 용의 선상에 올랐다. 그들의 논리라면 글쓰기가 어려운 사람도 글쓰기 AI를 사용하면 누구나 그럴싸한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글을 써서 ’ 좋아요’를 모으고, 구독자를 늘려 돈을 긁어모으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성공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모든 노하우가 담긴 2주 만에 쓴 전자책을 댓글 단 사람들에게 무료로 보내준다고 했다. 게다가 무려 선착순 NN 명 한정이라니! 누구라도 혹할 거 같다.
학교 졸업 후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과 글을 다듬어 먹고살고 있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이런데 글쓰기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글쓰기의 세계에 입성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글쓰기 AI의 도움을 받아 구조를 이해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스킬을 배우는 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쓰기 AI로 글쓰기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건 대환영이다. 하지만 AI가 도구가 아닌 전적으로 의지하는 존재가 되어 틀에서 나온 붕어빵처럼 똑같은 글을 찍어내기만 하면 과연 자신에게 어떤 득이 될까? 누구나 쓸 수 있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건 손가락 운동? 횟수 채우기? 자기만족? 아니면 세상에 (AI가 썼지만) 내 이름을 단 글을 펼쳐 놨다는 뿌듯함을 채울 수 있을까?
쌍화차 구매자들의 비슷비슷한 후기를 보는 순간 구매 의욕이 도둑맞은 듯 사라졌다. 영혼 없이 쓴 글에서는 냄새가 난다. 강철 가면을 쓴 듯 차갑고, 평면적이고, 팩트만 읊는 로봇 내음. 감상도 감정도 없는 글을 보고 있으면 맥이 빠진다. 변호사가 대신 써준 사과문처럼 깍듯하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글은 몇 줄만 읽어도 티가 난다. 사람이 공들여 쓰지 않았으니 공들여 읽기 싫어진다. 읽고 싶어 하지 않은 글을 쓰는... 아니 찍어내는 게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뭘 위한 걸까?
A4용지 한 장을 채울 글을 쓰기 위해 100장의 자료를 찾고 읽고, 쓰고, 다듬는다. 들이는 시간과 수고를 계산기로 두드려 보면 수학과 거리가 먼 나도 글쓰기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인지 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다듬는 근육이 생긴다. 잘 다듬어진 생각은 곧 글로 피어난다. 글은 글자 안에 갇히는 게 아니라 다시 행동으로 세상에 나온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 같은 글이 아니라 좀 어설프고, 울퉁불퉁해도 고유한 맛과 향이 있는 100% 수제 글에 한 번 더 눈에 들어온다. 인공지능이 찍어내는 글과 다른 ‘내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위기’를 거꾸로 돌리면 ‘기회’라고 했듯 AI에 기댄 고만고만한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AI가 할 수 없는 사유가 담긴 글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AI 글쓰기 툴이 세상을 지배한다 해도 우리는 살아 있는 한 각자의 ‘내 글’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