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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07. 2024

요가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평범한 하루가 쌓이면 생기는 일

이상한 날이었다. 비가 오지도 않았고, 연휴 시작 전날도 아니었다. 그런데 평일 밤 9시, 요가 센터 마지막 수업에 참석한 수강생은 나를 제외하면 단 한 명뿐이었다. 몇 해 전 선생님과 단둘이 했던 수업 다음으로 최소 인원 수업이었다. 덕분에 수강생별 맞춤 수업이 가능했다. 수업 시작하기 직전, 몸을 풀고 있는 내게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다.      


”회원님은 하고 싶은 만큼 딥한 동작하셔도 됩니다 “     


아무래도 이제 막 한 달 차쯤 됐을 신입 회원을 위한 저난도 자세를 중심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으니 그분보다 능숙한 나는 자유롭게 높은 난도를 시도하라는 의미였다. 경력이 다른 두 수련생을 오가며 핸즈온으로 자세를 잡아주던 선생님은 그 어느 때보다 바빠 보였다. 아무래도 다인원 수업을 할 때에 비해 단둘뿐이니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양쪽 모두 소홀할 수 없었을 거다. 한 시간 수업이 끝나고 땀에 젖은 매트를 닦고 정리하는 내게 선생님이 다가와 물었다.     


”회원님은 요가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 선생님 역시 이 요가센터에서 수업을 시작한 지 갓 한 달이 넘은 분이었다. 지난 수업들에서 시퀀스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보니 초보는 아닌 게 확실한데 내가 얼마나 요가를 했는지 가늠할 수 없었나 보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물티슈를 쥐고 매트를 닦던 손을 멈추고 정지 상태로 잠시 생각했다.     


'얼마나 됐지?'

     

초반 1년 정도는 달 수를 세어가며 요가 센터에 왔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수강 기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스크 선생님의 안내를 받고, 결제할 때만 겨우 생각났다. 그마저도 얼마 전부터는 연 단위로 결제를 하다 보니 얼마나 했는지 가늠이 안 됐다. 천천히 헤아려 보니 손가락 네 개가 접혔다.      


'아... 벌써 4년이 넘었구나...'      


뭔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어깨 통증 때문에 요가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도수치료 몇 번 할 돈이면 한 달 동안 요가를 하고도 남았다.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하고 통증 주사를 맞아도 돈과 시간을 쓰는 그 순간만 어깨가 편안했다. 정형외과와 통증의학과, 한의원에 가는 발길이 뜸해지면 어김없이 어깨가 결렸다. 급한 불만 끄는 약물치료, 물리치료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굳은 몸을 풀고 비뚤어진 자세를 바로잡으면 통증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일주일에 최소 3번에서 많으면 5번 요가를 했다.      


처음에는 동작을 따라가기는커녕 제대로 숨 쉬는 것도 버거웠다. 명상하는 동안 집중하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거나 딴생각에 빠지기 일쑤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동작인가 싶은 동작을 시범으로 선보이는 선생님과 또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 하는 장수생 수련자들이 신기했다. 그들을 따라 몸을 구기고 찢다가 현타가 왔다. 내 몸은 쓰레기구나 싶어서. 요가는 나약한 나라가 허락한 합법적인 고문이 분명했다. 요가 선생님들은 사실 지구인 개조를 위해 외계인이 급파한 비밀 요원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의로 이 사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즐길 리 없으니까.     


딱 3개월 후, 요가 불신 지옥에 빠졌던 중년의 요가 수련생은 제법 그럴싸하게 동작을 따라 하게 됐다.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선생님의 살아 있는 교보재이자 종종 시범 조교가 됐다. 그렇게 날마다 성실히 요가 수업에 임했고, 요가에 흠뻑 빠져 지냈다. 사실 가고 싶은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순간의 귀찮음을 밀어내고, 요가 센터에 간다. 수업을 마치고 불타오르는 고구마 상태로 센터를 빠져나와 찬 바깥바람을 맞을 때의 상쾌함은 다음 날 또 나를 요가 센터로 향하게 했다.     

 

처음부터 ’ 앞으로 4년 동안 요가 해야지’라고 목표를 잡았다면 의지가 나약한 난 이미 나가떨어졌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저 목표 동작이 되는 게 신기해서... 미션 클리어하듯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게 기뻐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듯 시끄러운 속세의 아우성을 잠시라도 차단하기 위해서 하루하루 요가 센터의 문을 열었다. 그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년이 됐다. 다시 그 시간이 쌓여 4년 넘게 요가를 한 ’ 숙련자‘가 됐다.     


평범한 하루가 쌓이면 기적이 찾아온다. 영원히 불가능할 거 같은 머리 서기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4년의 대부분은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날투성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자세를 잡고, 몸을 정렬하고, 코어에 힘을 빡 주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성공하는 날이 온다. 분명 어제는 실패했는데 오늘은 성공할 수 있다. 100번 굴러도 한 번 느끼는 성공의 즐거움이 나를 다시 일으킨다. 요가 센터 안에서 단단히 쌓은 4년의 희로애락 덕분에 요가 센터 밖의 나날도 덜 흔들리고, 견고하게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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