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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21. 2024

두바이 초콜릿이 먹고 싶어서

맛잘알의 말을 따라야 하는 이유

옷차림이 얇아지는 날씨에 군살이 여기저기 보여 운동 시간을 늘리고 식사량을 조절했다. 16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8시간 동안만 식사를 하는 16:8 식단까지 지키고 있다. 점심 전에는 물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물론 공복에 커피가 안 좋다는 걸 잘 알지만 이것마저 끊으면 나는 무슨 낙으로 사나?) 점심은 일반식으로 든든히 먹고 저녁은 7시가 되기 전 밥 반 공기로 마무리한다. 되도록 군것질하지 않고, 유산소 운동의 횟수와 강도를 높였다. 참기 힘들었던 오전 공복도 점차 편해지고, 버거웠던 유산소도 할만하고, 생활 습관의 변화가 제법 몸에 익숙해지던 시기, SNS를 둘러보다 신문물이 눈에 들어왔다. 두. 바. 이. 초. 콜. 릿. 이걸 보는 순간 바로 결심했다. 매월 하나씩 생전 해보지 않은 걸 해보는 혼자만의 도전? <2024 난생처음 프로젝트> 6월의 도전 목표는 두바이 초콜릿 먹어 보기다.      


탕후루, 크루키(크로와상에 쿠키 도우를 얹어 구운 빵)에 이어 대세는 두바이 초콜릿이다. 초콜릿 코팅 안에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와 카다이프(중동식 면)가 들어가 있는 두바이 초콜릿. 이 디저트는 한입 먹으면 초콜릿의 달콤함, 피스타치오의 고소함, 카다이프의 바삭함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맛을 내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두바이에 가보긴 했지만 두바이 초콜릿을 먹어 본 적 없다. 현지에서 피스타치오와 카다이프로 만든 디저트를 먹어 본 적이 있어 카다이프의 바삭한 식감은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와 초콜릿까지 섞인 맛은 또 어떨지 궁금했다. 얼마 전 한남동에서 식사를 하고, 소화시킬 겸 옆 동네 이태원까지 걸어가 방앗간 가는 참새처럼 세계 식재료 마트에 들렀다. 마침 눈에 보인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스프레드, 초콜 손에 쥐었다 놨다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나 한 번 먹으면 두 번을 해 먹을 자신이 없어 두바이 초콜릿 재료들을 조용히 내려놨다. 한창때는 ‘유행템’이라고 하면 물 넘고, 산 넘어라도 찾아가 꼭 손에 쥐어야 직성에 풀리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열정 따위 사라진 지 오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이라는 막연한 말을 두바이 초콜릿 위에 살포시 덮어 놓고 현생을 살았다.      


그러다 종종 가던 스콘 전문점 공식 SNS 계정에 반가운 공지가 올라왔다. 신메뉴로 ‘두바이 초콜릿’이 론칭했다는 소식이었다. 제철 재료를 듬뿍 넣은 스콘을 주력으로 파는 곳에서 만든 두바이 초콜릿이라니 기대감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스콘집 사장님이 직접 푼 두바이 초콜릿 론칭 비하인드 스토리는 SNS 속 공구 리더(?)들이 흔히 푸는 썰과 닮아 있었다. 거래처 담당자를 조르고 졸라 품귀 현상이라는 카다이프를 어렵게 구했다는 스토리는 마음속에 ‘두바이 초콜릿 맛의 환상’을 키워가던 흔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굳이 찾아갈 필요 없이 내 활동 반경 내에 있으니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매장으로 향했다.      

 

신메뉴 론칭 2일 차. 첫날보다 배로 제품을 생산했다는 공지를 보고 느긋하게 매장에 도착했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쇼케이스에는 먹음직스러운 스콘 동산 사이로 텅 빈 쟁반만 반짝였다. 그렇다. 그건 두바이 초콜릿이 잠시 머물다 빛의 속도로 사라진 곳이었다. 매장 오픈 1시간 20분 만에 이미 완판이었다. 어제는 오픈 40분 만에 완판 되는 바람에 오늘은 수량을 늘렸다는데도 소용없었다. 부지런한 자가 두바이 초콜릿을 얻는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려는 그때, 사장님의 한마디에 발이 멈췄다.     


두바이 초콜릿 케이콘이 더 맛있어요.


사장님의 단호한 말에 다시 쇼케이스를 들여다봤다. 스콘과 함께 이곳의 시그니처, 케이콘(케이크와 스콘을 합친 떠먹는 디저트)이 두바이 초콜릿 버전이 남아 있었다. 난 간단히 두바이 초콜릿 맛만 볼 정도면 되는데 크기가 다소 부담스러웠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헛걸음한 손님을 위한 따스한 배려였을지 매출을 높이기 위한 상술이었을지 모를 사장님의 두바이 초콜릿 케이콘 권유에 살짝 고민하다가 고삐가 풀렸다. 매일 군것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식단도 운동도 잘 지켜왔으니 오늘은 깜짝 치팅 데이라 치자!라고 합리화하며 큼직한 케이콘을 주문했다.



<이거 먹으면 두바이 부자 됨...>이라고 적힌 글자를 보고 피식 웃으며 뚜껑을 열었다. (민트 초코일지도 모를) 민트색 데코 아래로 두터운 초콜릿이 보였다. 숟가락을 푹 찔러 안을 들춰 보니 직접 만든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와 실 같은 카다이프가 섞여 있고, 다시 초콜릿층 그 아래로 촉촉한 초코 스콘 크럼블이 담겨 있었다. 쉽게 말해 초코 케이콘 위에 두바이 초콜릿이 얹어진 느낌이었다. 기대에 차 크게 한 입 떠서 입에 넣었다. 달지 않은 초콜릿이 먼저 와작 부서지고, 다음으로 특유의 피스타치오 향이 가득한 부드러운 크림이 입안을 맴돌다 바삭한 카다이프 면이 씹혔다. 두바이에서 먹었던 디저트들이 그랬듯 혀가 저릿하게 달았던 맛을 상상했던 내 기준에 K-패치가 잘 된 디저트였다. 과하게 달지 않고, 각 재료의 맛이 조화롭게 느껴졌다. 흔하게 먹어 보지 못하는 맛이기도 하고, 과한 단맛을 거부하는 부모님 입에도 잘 맞겠다 싶었다. 날씨가 날씨라 1시간 이내에 냉장 보관을 하지 않으면 녹을 수도 있으니 다음에 집에 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디저트를 음미했다. 그때 사장님이 한 번 더 나를 놀라게 했다.   

  

이거 두바이 초콜릿 만들다가
여분 남은 건데 드셔 보세요


오늘의 방문 목적인 원본 두바이 초콜릿을 먹지 못한 나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두 조각을 서비스로 주셨다. 감사함에 거북목 상태로 굽신거리며 초콜릿을 받아 들었다. 대체 어떤 맛일지 궁금해 받자마자 냉큼 한입 베어 물었다. 케이콘 위에 올라간 두바이 초콜릿 층과 맛은 똑같았지만, 두께감이 달랐다. 물론 가격 차이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두바이 초콜릿이 손톱 두께의 카다이프가 있었다면 케이콘은 손가락 마디만큼 카다이프가 있었다. 두 배 가까운 가격에 어울리는 풍성한 바삭함이었다. 왜 사장님이 두바이 초콜릿 보다 두바이 초콜릿 케이콘이 더 맛있다고 했는지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음식에 자부심 있는 맛잘알 사장님이 추천하는 메뉴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연구한 사람의 노력을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살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두바이 초콜릿의 유행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탕후루가 그랬듯 언제 그랬냐 싶게 유행이 사그라질지 모른다. 붕어빵 같은 스테디셀러가 되기에 두바이 초콜릿은 한계가 많다. 재료의 공수, 단가, 보관 방법 등 여러모로 끝이 보인다. 그러니 설렘이 사라지기 전에 부지런히 즐겨야 한다. 마음이 식는 건 한순간이고, 또 새로운 유행템은 급부상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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